트라얀 로마 황제 신전.
버가모를 가려면 옛 이름으로 카이쿠스라는 강을 끼고 도는 골짜기에 집들이 모여있고 지금은 인구가 약 7만명 가량 살고 있는 버가마(Bergama)라는 마을을 지나게 된다. 가게 앞엔 카펱을 널널이 깔아놓아 밟고 지나가기가 미안해 피해가느라면 좁다랗고 구불거리는 골목길이 나온다. 한참 올라간다 싶으면 옛 버가모가 적당히 언덕위에 누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서 올려다 보면 아주 가파르게 보인다. 특히 옛 성채터 위에 길다란 부채꼴 모양을 한 계단식 극장은 더욱 가파르게 보여 꼬꾸라질 것만 같다. 그러나 막상 올라가 보니 그런대로 걸을만 하였는데 2만명이 앉을 수 있었던 극장은 여전히 급경사로 비탈져 보였다. 다른 노천 극장처럼 이곳도 배우가 아무리 작은 소리로 말을 하여도 제일 끝줄까지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적으로 거의 완벽하다고 한다.
버가모는 셀리누스 강으로 부터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비옥한 고원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많은 문명을 꽃 피웠다. 한 때 에베소, 알렉산드리아나 안티옥과 마찬가지로 다른 지중해의 헬레니즘문명의 중심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문화, 상업과 의술이 발달한 도시이기도 했다. 기원전 334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다스렸는데 그가 죽은 후 그의 장군이었던 리시마쿠스가 물려받았다. 그 후 아탈로스(Attlos) 왕과 유메네스(Eumenes) 왕이 다스렸는데, 왕들이 버가모에 눈부신 흰 대리석으로 덮인 거대한 공공건물들을 많이 세웠다. 성채에는 도서관, 신전, 극장, 궁전과 광장같은 유적들을 볼 수 있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끈다. 기원후 2세기 후반 아탈로스 3세 (Attalos III) 때 그의 유언에 따라 에베소와 함께 버가모는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로 화려했고 제우스 신을 믿었고 황제숭배사상으로 1년에 한번 씩 분향하였는데 바벨론 종교가 왕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유메네스 2세때에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제단을 지었는데 그 외벽의 장식띠에는 신화속에 나오는 신들과 거인들의 싸움을 나타내는데 가장 아름다운 조각으로 유명하다. 1878년에 독일인 기술자인 칼 휴만(Karl Humann)이 버가모를 발견하여 발굴을 시작하였는데 다른 것들은 잘 보존해 놓았지만 이 제우스 신전만은 고스란히 동베를린으로 옮겼다. 브란덴베르그 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 도시를 흐르는 강이 있어 두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삼각지역에 뮤지움 아일랜드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여러개의 뮤지움들이 모여 있는데 그 유명한 버가모 뮤지움 (Pergamum Museum)이 바로 이곳에 있다. 독일이 통일되고 나서야 볼 수 있었는데 그 크기와 아름다움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터키 정부는 버가모의 제우스 신전을 다시 돌려 줄 것을 독일 정부에 신청해 놓은 상태인데 독일이 꿈쩍이나 할까 싶다.
에베소에 있었던 아르테미스 신상은 영국의 대형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터키 정부가 영국에게 정중하게 서신을 보내면서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곳 터키에 있었던 아르테미스 신상은 터키의 푸른 하늘 아래 있는 것이 더 아름다울 것 입니다’ 라고 공문을 보냈더니 영국에서는 ‘그러면 아르테미스 신상이 있는 방을 푸른 터키색으로 칠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정중한 답신을 보냈다고 한다. 터키 지역에서 유명한 준보석에 속하는 푸른 돌을 터키석(turquoise)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를 사용하여 얼마나 운치있는 외교적 대화가 오고갔는지 두 나라의 감정을 상상하며 은근히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관광거리가 되는 거의 모든 유적들은 그리스, 로마시대의 것들이다. 그들의 것을 터키인들이 자기들 조상의 것 인양 보여준다는 것이 좀 이치에 맞지 않는 것도 같다. 터키인인 안내자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갈등의 그늘이 스치는 것을 느꼈던 것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리라.
버가모는2십만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어서 알렉산드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고대에 몇 안되는 가장 큰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 당시 이집트가 파피루스를 독점해서 팔고 있었는데 버가모의 도서관을 너무 시기한 나머지 책을 만들지 못하도록 파피루스의 공급을 중단해 버렸다. 왕은 포기하지 않고 가죽에 책을 복사하도록 하였고 그로인해서 양피지로 만든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처럼 둘둘 말 필요가 없고 양면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최초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는 책이 되었다. 사람들이 양피지를 더 선호한 까닭에 파피루스의 판로는 사향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양피지는 어린 양가죽을 사용해서 부드러웠고 특히 어미 배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끼양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는 아주 고급이었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에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69?-30BC)의 사랑은 세기적으로 유명한데 에베소에도 같이 와서 화장품과 천을 샀다고도 하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도서관이 지진으로 없어져 실의에 빠진 클레오파트라를 기쁘게 하려고 안토니오가 버가모에 있던 도서관을 그녀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던 책들을 몽땅 이집트로 옮겨가는 바람에 버가모에 있었던 책들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버가모의 남서쪽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우스 (Asclepius)의 신전이 있는 아스클레피온 (Asclepion)이 있다. 아스클레피우스는 보통 뱀이 꼬고 있는 모양을 한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뱀은 자라면서 껍질을 벗기 때문에 새롭게 된다고 해서 회춘과 예언을 상징했다고 한다. 피부가 새로워진다고 얼굴을 벗기는 현대의 박피술을 연상케 한다. 두 마리의 뱀이 감긴 꼭대기에 두 날개가 있는 지팡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인데 평화와 의술을 의미한다고 해서 미육군 의무대의 휘장이기도 하다. 기원후 2세기경에 버가모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성장하여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의술을 베풀었던 갈렌(Galen, 129-199 AD)은 매우 유명한 의사였고 많은 글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엔 검투사들을 치료하였었는데 다시 의학에 정진하면서 버가모에 있던 의과대학에 혼신을 기울였는데 그 당시 그에 의한 의학적 발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아스클레피온은 세계 최초의 헬스 스파 형 종합병원이었다. 피곤에 지친 지도급 인사들이 많이 찿아왔다는데 흰 대리석으로 잘 지어진 엄청난 시설에 놀라웠다. 긴 입구라던지, 주랑을 갖춘 비밀의 길이 있고, 명상하는 곳이라던지, 음악이 퍼지고, 물을 끌어들여서 물길따라 조용히 흐르는 소리마저 들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모든 피로와 마음의 짐을 풀 수 있는 여러가지 치료가 있어서 가망이 있는 환자들은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태어나기 전인데도 그 당시에 이미 꿈을 분석하는 치료방법이 있어 정신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치료의 효험이 있는 온천수에 몸을 담근다던가, 3천5백명이 앉을 수 있는 극장에 가서 소포클레스의 연극을 보던가, 친구들과 어울려 며칠씩 머물면서 피로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산 위의 버가모(Pergamum)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버가마(Bergama)에 내려오면 붉은 초기 기독교 교회당(Red Basilica)이 있다. 이곳은 기원후 2,3세기 경에 이집트 신인 쎄라피스를 섬기던 거대한 신전이었는데, 그 후 비쟌틴 시대에 기독교 교회당으로 바뀌었다. 이 붉은 대 교회당은 처음엔 흰 대리석으로 둘러쌓였는데 지금은 겉은 다 떨어져버리고 바닥의 대리석 만 남아있다. 건물 벽에 붉은 벽돌 만 남아있어 레드 바실리카로 불리기도 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버가모 교회에 대해 이렇게 씌여있다. (요한계시록 2장 12~17절)
“버가모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날카로운 양날 칼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 곳은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또 내 신실한 증인인 안디바가 너희 곁, 곧 사탄이 살고 있는 그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네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희 가운데는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을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올무를 놓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음란한 일을 하게 한 자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 그러니 회개하여라.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너에게로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을 가지고 그들과 싸우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겠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 위에는 새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 돌을 받는 사람 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니골라파(Nicolaitans)는 “영혼은 순결하고 육신은 더럽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첫째로, ‘복음시대이므로 율법이 필요 없다’ 둘째로, ‘육신은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 세번째,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보호받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기독교가 박해의 시대를 지나 국교로 선포되면서 안정과 편안을 구가하는 시대가 되는데 처음에 가졌던 믿음이 서서히 이방 종교와 결합하게 되어 순수하지 않은 변질된 기독교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버가모 아크로폴리스의 대형극장.
트라얀 로마 황제 신전.
제우스 신전이 있던 곳. 지금은 독일 베를린 페르가멈 박물관에 고스란히 옮겨져 있다.
버가모 왕국(아크로폴리스) 유명한 도서관이 있던 자리였던 것 같다.
로마 트라얀 황제 신전.
세계 최초로 정신심리치료를 했던 아스크레피온(Asklepion) 병원. Asklepion은 아폴론의 아들로 건강과 약의 신이었다. 환자들에게 생의 의욕을 불러주었으며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꿈해몽도 해주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 있는 샘물은 지금도 흐르고 있는데 물의 성분을 조사해보니 방사능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음이 판명되었더고 하니 치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스크레피온
아스크레피온
열주가 늘어선 곳은 버가모 아스클레피우스 신전이 있던 장소이다.
아스크레피온에는 물, 진흙, 스포츠, 연극 그리고 도서관에서 독서를 함으로 병을 고쳤다고 한다. 환자들은 ‘성스러운 길’이라는 대리석 길을 맨발로 걸어가면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그 후 정원 한 가운데를 흐르는 샘물로 목욕이 끝나면 사진에서 보는 어둡고 조용한 80m의 지하터널을 지나서 치료실에 들어 갔다. 이 지하터널은 샘물에서 물이 입구 계단을 따라 흘러 들어오게 만들어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걷게 되는데, 천정에 나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의사들이 조용히 속삭여서 환자들에게 신비한 경험을 통해 병이 나을 것이라는 심리치료를 제공했다고 한다.
버가모에서 심리치료를 하던 텔레모스 신전.
아스크레피온. 음악과 연극으로 치료하는 공연장이 보인다.
아스크레피온
아스크레피온.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ypocrates)도 이곳에서 출생하였고 사티로스나 갈레누스와 같이 유명한 의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멀리 언덕위에 세워졌던 버가모 왕국(아크로폴리스)이 보인다.
현재 버가마(Bergama)라고 불리는 도시의 거리 모습. 조금 떨어진 곳에 버가모 교회가 보인다. 이 지역은 가장 오래된 곳으로 선사 시대부터 형성된 도시로 주전 3세기에 독립된 왕국의 중심이 되어 높은 문화를 이루었던 곳이다.
이곳은 원래 이집트 신인 세라피스(Serapis) 신전이 있던 곳이었는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채낵된 후 교회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세라피스는 마케도니아 통치시기(BC 305-30)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국가 신이다. 그는 머리 위에 바구니를 얹은 곱슬머리에 턱수염이 있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세라피스 숭배의 주된 도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학문과 상업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였다. 세라피스는 질병의 치유자이며, 운명을 초월하는 신이고, 오시리스로부터 지하세계의 신격을 계승한 신이었다.
버가모 교회
버가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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