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key_Haran015-0

현재 터키 동부에 있는 아브라함이 살던 하란(Haran)에서 그 당시의 복장을 하고 사진 찍은 필자.  아직도 그 당시에 살던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여행은 삶과도 같다.

낮선 곳을 향해 두려움과 설레임을 안고 떠난다.  원래 여행이라면 몸져 누웠다가도 씻은 듯 순식간에 밝은 모습이 되어버리는 내겐 미지로 향한 호기심 때문에 떠남은 언제나 더 할 수 없는 신선한 자극제가 된다.

일상을 벗어나면서 느끼는 소박한 자유가 아무도 나를 모를 것이라는 안도감에 부자유스러움을 훌흘 던져 버릴 수 있어서 좋다.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짜증스러움과 갈등속에서 좁아진 자신을 발견할 때 작은 짐을 꾸려 훌쩍 떠나보면 그렇듯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던 점들을 재평가 할 수 있어서 좋다.  인류문명의 발자취를 바라보며 높음이 있으면 낮음도 있듯이 그들의 흥망성쇠를 보며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도대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한 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이 세상에 와서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  그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 지극한 한 점이 되어 덧없이 흘러가 버림을 깨닫게 될 때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살고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각양각색의 삶의 형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점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오래 전 여행 초기에는 갖가지 걱정으로 짐을 잔뜩 갖고 떠나서 오죽하면 우체국에 들러서 트렁크 하나를 도로 부친 적이 있었겠는가?

그때엔 유레일 티켓을 가지고 기차로 여행하던 9월이 익어가던 계절이었다.  유럽의 날씨란 항상 변덕스럽지만 그 날따라 더욱 쓸쓸하고 음울한 날이었는데 점심시간 동안에 문을 닫는 것도 모르고 갔다가 꼼짝없이 밖에서 기다리다 어렵사리 부쳤다.

그곳에서 쌍둥이표 손톱정리 한 세트를 사서 함께 넣었는데 안타깝게도 한쪽에 붙은 거울이 반쪽으로 금이 가 있었다.  지금도 열고 쓸 때마다 옛 추억의 파편들을 주우며 혼자 싱겁게 웃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행을 떠날 땐 내가 없을 동안을 생각해서 깨끗하게 정리하느라 길게는 며칠을 고생하다 문득 죽음을 연상했다.  오랜 병에 시달리다 죽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예고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하던 일을 그냥 그대로 놓고 갔다 왔다.

여전히 책상 위에는 신기하리만치 떠나기 전 그 모습 그대로였고 나 자신만 변해있었다.  이 얼마나 상쾌한 경험인가?.  여행의 연습은 곧 인생의 연습인 것 같다

1999/07/0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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