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  드디어 우리도 월드컵 첫 승리를 해냈다.  붉은 색이 넘실대는 응원석의 함성과 어울려 시종일관 전 게임을 리드하며 팀 전체가 속전속결로 뜨거운 열정을 뿜으며 상대를 압도하는 불꽃 튀기는 한판승부였다.

첫 경기부터 세네갈이 지난 번 우승팀이었던 프랑스를 누르고 이기는 이변을 일으키면서 기량과 경험이 부족한 팀들에게도 길고 짧고는 대어보아야 한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리고 우리도 16강이 아니라 8강이나 4강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을 안고 온통 우리의 마음이 축구장으로 향한다.  마치 지금도 여전히 불가사의한 이스터 아일랜드(Easter Island)의 묵묵히 한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거대한 석상들인 모아이(Moai)처럼 말이다.

1954년 스위스 대회를 시작으로 6번째 월드컵 본선에 서게되는 한국팀은 4무 10패로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지도로 별로 신통치 못했던 한국팀을 세계 최강인 프랑스팀과의 예선경기에서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일본 스포츠지는 대표팀 감독 랭킹 9위로 뽑힌 히딩크 감독의 강점으로 선수재질을 파악하는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선수를 이끌어가는 능력을 꼽고 있다.  각 개인의 숨은 자질을 볼 줄 아는 예리한 눈과 그러한 자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 주는 그는 분명히 훌륭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몇년 전 11월 중순에 세상에서 가장 가늘고 길다랗게 생겨서 2천7백마일이나 태평양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칠레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북쪽으로는 페루와 볼리비아를 맞대고 있어사막성 기후를 나타내고, 중부는 수도인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풍부한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면서, 동쪽으로는 아르헨티나와 험준한 안데스산맥을 따라 나뉘어져 있어 천혜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남쪽엔 극지방의 맛도 볼 수 있다.

하루는 칠레의 산티아고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잇는 유일한 도로인 60번으로 향하는데 칠레사람들이 볼리비아와 축구경기가 있다며 차에 국기를 달고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분주히 다녔다.  톨게이트에 멈출적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비바 칠레를 외쳤더니 직원들이 좋아서 자기들도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며 웃음으로 화답했다.

눈발이 휘날리고 구름도 머무르는 험한 안데스산맥을 넘고 돌아오다 로스 안데스로 가는 길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뛰쳐나온 듯 서로 얼싸안고 국기를 흔들어대며 기쁨이 넘치는 환호소리로 조용하고 초라하기만 한 동네들이 갑자기 활기가 넘쳐보였다.  말도 잘 안 통하지만 물어보니 볼리비아를 3:0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비바 칠레를 외쳐주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가관이었다.  거리엔 젊은이들이 미친듯이 질주를 하며 괴성을 질러댔고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을 해산시키려고 말 탄 순경들이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큰 도로는 젊은이들이 모두 차를 가지고 나왔는지 막혀서 꼼짝도 할 수 없었고 모두들 목이 터져라 소리소리 질러대서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덕분에 20분이면 도착할 숙소에 3시간도 넘게 걸려서 한 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었다.

오랫동안 칠레에 산다는 독일계 미국인이 빈정대며 칠레가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원래 볼리비아가 강한 팀인데 고산지대에 사는 그들이 칠레에서 경기하려면 적어도 3일 전에 와서 이곳 기후에 적응해야 하는데 고의로 하루 전에 도착하게 해서 그 다음 날 막대한 체력적인 차질이 생겼기 때문에 도저히 경기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정치적이라고 꼬집었다.  칠레팀이 볼리비아에 갈 때도 마찬가지란다.  이 경기로 칠레는 프랑스에서 열리는 월드컵 진출권을 따낸 것이다.

월드컵 통산 5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브라질팀의 스콜라리 감독은 한국 축구가 16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는데 그것은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을 훌륭히 지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직력도 좋아지고 선수들의 자신감이 넘치도록 한 그는 진정 위대한 지도자이다.  이참에 한국의 정치나 경제도 혈연, 지연, 학연이 전혀 없어 깨끗하고 투명하게 이끌어 갈 해외 지도자를 초빙하면 이보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윤명희
200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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