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희
2002/1/10
폭력으로 얼룩졌던 한 해를 보냈다. 흩뿌려진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어두웠던 시간이었다.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살아왔던 사람들조차 죽음이 아주 분명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느꼈던 지난 한 해였다.
그러나 구름 뒤엔 여전히 태양이 빛나고 있다. 고통이 지나간 뒤에는 기쁨도 오리라는 희망을 안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언젠가 폴란드에 갔을 때였다. 크라카우(Kradow)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악명 높은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Auschwitz)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절망의 장소였다.
그곳을 향해 수많은 히틀러의 부자격 자들과 유태인들을 실어 날랐던 구부러진 철로들이 녹슨 채 아무렇게나 나동그라져 널려있어서 공포에 젖은 사람들의 절박한 신음소리와 목적지에 멈추려는 기차의 쇳소리가 뒤엉켜져 귀에 들려오는 듯 했고, 탈출을 막기위해 고압전류가 흐르던 길게 늘어진 철조망 안에는 낡은 수용소 건물들이 흉한 몰골을 하고 을씨년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트렁크에 가지고 왔던 옷가지들이며 안경, 세면도구 같은 생활용품들과 또한 죽어서 남기고 간 여러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엉성하고 낡아빠진 닭장 같은 수영소 시설들은 그 당시의 비참함을 말해주었고, 그들이 죽어가던 가스실이며 시체를 태우던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당시의 참상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해질 수 있는가? 그 곳에서 단체로 여행온 듯한 어린 유대인 학생들이 인도자의 설명을 들으며 동족의 참상에 몸서리치듯 흐느끼는 모습도 보였다.
길 양쪽에는 그때를 아는지 모르는지 높다란 미루나무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있었고 군데군데 높이 솟은 감시원들의 망루를 따라 낮은 수용소 벽돌건물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누구든지 죽을 차례가 되면 갇혀서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작은 감방(starvation cell)들이 있었다. 그 중 좀 다르게 보이는 한 지하실 감방이 눈에 띄었다. 조그만 쇠창살문이 달려있는 육중한 쇠문 너머로 쇠창살의 어둡고 무거운 그림자가 유난히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 한 유태인이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자 자신은 아직 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절대로 죽을 수 없다며 애걸을 했다고 한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프란시스코회에 속한 폴란드인이었던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Polish Franciscan, Father Maksymilian Kolbe)가 생명을 구걸하던 그 유대인을 위해 자신의 죽음을 자청했다고 한다. 자신은 이미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니 자신이 그 사람 대신 죽게해달라고.
그 유태인은 독일의 패망 후에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방 한가운데 대형 초가 얹혀진 커다란 촛대 밑에는 아담한 꽃다발이 놓여있었고, 마주보이는 벽 오른편에는 신부를 기념하는 동판으로 만든 인물상이 걸려있었는데 오가는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으며 사람들의 마음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성경에는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다. 콜베신부가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숭고한 사랑의 정신은 닫혀져있던 이웃에게 마음을 열기에 충분한 것이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며 진정한 사랑은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란 말씀은 기독교의 핵심사상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말씀 가운데엔 믿음이나 소망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사랑은 구체적인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더욱 값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랑은 인간의 마음을 신과 연결시켜준다.
경희대 명예교수 서정범 선생의 비교 언어적 분석에 의하면, 몽골어와의 비교를 통해 사랑(愛)과 사람(人)은 말의 뿌리가 같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원래 뜻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나간 구겨진 추억들은 뒤돌아보지도 말고 상실의 아픔을 통해서 더욱 승화된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겠다. 도덕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처럼 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올해엔 더욱 조건없는 사랑을 베풀도록 노력해야겠다.
“날마다 오늘이 그대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라. 날마다 오늘이 그대의 첫날이라고 생각하라” 는 유태인의 격언과 같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고통스럽게 고민하던 일들도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이 첫날이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희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오늘도 태양이 여전히 떠오르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우리의 삶은 이 세상 끝날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470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