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희
2011-05-07

 

봄이면 뒤뜰을 서성거리셨지요.

세 개의 커다란 화분 안에 세 그루의 모란

뻗쳐 오른 가지들이 온통 초록 잎으로 뒤덮히면,

줄기 끝에 매달린 작은 모란 꽃 송이들.

오월에 피는 모란은

함박꽃 되어 화알짝 웃고

더 할 수 없는 향기를 멀리까지 풍기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해

세 그루의 모란은 시름거리더니

잎이 떨어지고 가지가 다 말라 버렸습니다.

넘친 비료로 그만 숨이 멎어 버렸지요.

고마운 가해자, 후회해도 소용 없었어요.

운명이라 생각하고 슬픔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흘러갔어요.

그 곳엔 다른 것들만 무심히 자랐습니다.

 

밖을 보라는 급한 음성이 들린 어느 날.

무거운 세 화분엔 죽었던 모란이 움을 틔웠습니다.

몇 해 코마였던 모란이 깨어나

흙을 밀치고 솟아나오는 생명의 신비함

아,  그 곳엔 여전히 뿌리가 있었습니다.

 

올해엔

또 다시 모란이 피고

그 향기에 다시금 흠뻑 젖을 거예요.

그리고 활홀한 봄 속에 눈부시게 잠길 것입니다.

 

 

세 그루의 모란 II

윤명희
6/4/2011

 

오랜 망설임 끝에

모란이 피었습니다.

못다한 사연들일랑

잊어버려 달라면서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애타는 마음 가다듬으며

살며시 붉게 핀 모란 곁에서

말없이 쳐다봅니다.

 

몇 년의 갇혔던 정열이

붉은 망울되어 피어나

퍼지는 무언의 아우성

나 또한

침묵으로 기쁨을 억누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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