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지른 중국동포 어제 장례… 쉼터측, 병원비 등 모두 부담
“원수까지 사랑… 못 잊을 것” 중국 동포 유족들 감사 편지

23일 오전 외국인 노동자 복지시설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생활하는 사람 10여명이 서울 구로동 고려대구로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고인(故人)은 지난 8일 지구촌사랑나눔 건물 1층 무료급식소에 불을 지른 김모(45)씨였다 <본지 10일자 A11면>. 김씨는 당시 불이 커져 대피하다 건물 아래로 추락했고, 머리를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매다 12일 밤 숨졌다.

자 신들의 생활 터전에 불을 지른 가해자이지만 이날 지구촌사랑나눔 사람들은 김씨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6월 한국에 들어와 적응에 실패한 뒤 술에 취해 홧김에 불까지 지른 김씨지만, 김씨 역시 지구촌사랑나눔에서 돌보는 외국인 노동자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52) 목사는 “죄는 나쁘지만 김씨가 정말 다른 사람들을 해하려고 불을 지르진 않았을 것”이라며 “더는 김씨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는 고인의 관에 손을 얹고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찾아왔지만 비참한 죽음을 맞은 김씨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추도했다.


	23일 서울 고려대구로병원에 마련된 방화범 김모씨 장례식장에서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가 예배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유족이 김 목사에게 직접 쓴 편지.

23일 서울 고려대구로병원에 마련된 방화범 김모씨 장례식장에서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가 예배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유소연 기자

김씨의 치료비와 장례비로 필요했던 약 1000만원도 지구촌사랑나눔에서 지원했다. 지구촌사랑나눔은 그동안 3000명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들의 장례를 무료로 치러줬다. 김 목사는 화재 다음 날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김씨를 찾았다가 치료비 걱정으로 애를 태우는 유족을 보고 지원을 결심했다. 김 목사는 “처음엔 크게 다친 사람이 불을 지른 당사자 한 명뿐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김 목사는 “형편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들은 보통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는데, 유족이 차마 화재 피해자인 우리한테 도와달라는 이야기도 못 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을 반성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이날 김 목사에게 직접 쓴 편지<오른쪽 사진>를 전달했다. 고인의 형 김모(59)씨는 “동생의 큰 죄를 감싸준 분들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편지에 ‘모든 것을 용서해주신다고 했을 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장례를 치러주시겠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큰 손해를 끼쳤는데 도리어 은혜를 베풀어주시다니 믿기지 않았습니다. 피해를 한 줌도 갚지 못했는데 도리어 우리를 도와주시는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썼다.

한편 2억원 넘는 재산 손해를 입은 지구촌사랑나눔을 향한 후원은 계속되고 있다. 소액 후원이 끊이지 않았고, 현대오일뱅크 ‘1% 나눔재단'(이사장 김창기)에서는 2000만원을 긴급 지원하기도 했다. 23일까지 1억원이 넘는 돈이 모여 다음 주부터는 화재 복구 작업이 본격 시작된다. 김 목사는 “큰 화재로 많은 사람이 상심했지만 많은 분의 도움 덕에 다시 시작해보자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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