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아일랜드 네일 가게 주인이 자살했다는 소식, 한인유학생이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소식, 영업부진과 환율로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 현재 상태가 지속되면 1,2월에 한인 비즈니스 50% 도산이 거의 확실하다는 등 대충 이런 우울한 기사들이 작년 말 신문을 메웠었다.
작년에 이미 2009년은 아마 견디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돌긴 했었다. 그러나 막상 피부로 느끼면서 그것을 현실로 받아드리기엔 너무 힘든 것은 사실이다. 상가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거리엔 오가는 차량도 눈에 띄게 줄었고 동네 길거리도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 저곳에서 직장을 잃고 앞길이 막막해진 사연들이 늘어나고 다시 일거리를 찾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할 것이라고 쳐진 어깨로 긴 한숨을 내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요 며칠 사이에 퀸즈 베이사이드에서 아내를 죽이고 동반 자살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그 중 하나는 네일 가게를 운영하던 한인 부부가 빚에 쪼들리다 20살 난 외동딸을 남긴 채 동반자살한 사건이고 하나는 활동적이었던 아내를 살해한 후 남편이 목 매어 자살한 사건이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종종 6.25 피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다. 바로 눈 앞에 폭탄이 터져 순식간에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광경을 수도 없이 봤다는 것이다. 전쟁통에 생과 사의 길목에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엄마는 일 년이 넘도록 생리도 없어졌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가 어린 아기를 이불에 싸서 길가에 버리고 떠나서 길 양옆에는 남겨진 아기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자기 자식을 버리는 극단의 결정을 내렸겠냐마는 엄마는 죽으면 죽었지 절대로 자식을 포기하지 못한다며 얼마나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번만 살려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노라고…
엄마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기만 하다며 버려진 한 아기는 양손에 떡을 들고 두 눈만 반짝이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 그 아기 엄마가 자신의 아기가 그 떡이라도 먹고 생명을 더 연장하길 바랬기 때문일 것이라며 그 조그만 어린 것이 어떻게 그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더 가슴 아프고 충격적이었던 이야기는 한 아기엄마가 사방에서 정신없이 총알이 날라오니까 자기만 살겠다고 엎고 있던 아기를 방패 삼아 소리나는 쪽으로 계속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더란다. 목숨이라야 파리목숨 같기만 한 계속되는 극한 상황에서 살고 싶다는 일념의 굴절된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나 무서운 전쟁 중에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더구나 미국에서 이렇게 덧없는 죽음을 택하다니 그들이 과연 죽음 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단 말인가?
딸에게 계속 전화하고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기미를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설마 했던 것 같다. 주위에 진정으로 진심을 나눌 친구라도 있었더라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 전문인과 상담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을 용기가 있으면 살 용기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한번뿐인 귀한 삶인데 말이다.
2009/03/01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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