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인터넷 방송에 의하면 15세 소년의 3분의1이 대마초를 흡입하는 등 영국 중학생들의 마약사용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만연하는 현상이다.

의사인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있는 그리스계 미국친구인 안젤라는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마을학교(Village School)에서 그리스 신화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안학교라고도 할 수 있는 그곳은 보통 학교에서 적응하기 힘든 학생들을 따로 모아 지도하고 있는데 중학교 학생들이 마약에 찌들어 있는가 하면 아직 어린 나이에 술과 섹스에 젖어 있어 이미 인생의 어둡고 음침한 나락까지 치달은 듯한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백인학생들 뿐만 아니라 동양학생들도 있다고 하는데 의외로 아주 부유한 가정출신들이라고 한다.  너무 돈이 많다보니 자신의 욕망에 따라 거칠게 없는 부모의 행동으로 인해 자녀들이 방종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돈이 일만 악의 뿌리”인 셈이다.

바람기 잘 날 없는 남편의 행동에 맞바람 쳐 아내는 홧김에 아무 말 없이 훌쩍 나가서 들어오지도 않고, 어느 한 곳 마음 붙일 곳 없는 자녀들은 술과 마약에 쉽게 빠져들게 되다보니 학교공부는 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13살 난 딸을 픽업하러 왔던 아버지가 젊고 잘 생긴 한 여선생을 보더니 그 딸이 보는 앞에서 찝적거리더란다.  자기 선생님을 희롱하는 것을 보고 심한 모욕감과 혐오감을 느낀 딸이 아버지에게 소리소리 지르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딸의 아버지는 전혀 표정 변화없이 천천히 안젤라에게 얼굴을 돌리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어깨만 으쓱해 보이더라는 것이다.

새국어사전은 ‘악’이란 ‘옳바르지 않고 착하지 않으며 양심을 좇지 아니하고 도덕을 어기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미국 성공회 신부이며 정신분석가인 존 A. 샌퍼드는 ‘융학파 정신분석가가 본 악’이라는 책에서 선과 악이 다음 세가지 입장 중 하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첫째, 자아중심적인 입장이다.  1620년에 뉴잉글랜드 지역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몇 해 전 전염병으로 수많은 인디언들이 몰살했다는 말을 듣고 ‘이교도를 없애준 전염병’을 감사했다고 한다.  이처럼 타인의 불행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어 자아중심적으로 극단적인 이기적 선이 형성된다.

둘째, 선과 악이 인간의 감정에 유래한다고 단정하는 입장이다.  다른 사람의 집을 부수는 것을 목격했을 때 악이라고 생각하고, 물에 빠진 어린 아이를 구했을 때 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그 이면을 들여다 본다면 선과 악이 뒤바뀔 수도 있다.  단순히 보상을 위해 어린 아이를 물에서 건져낼 수도 있겠고, 남의 집을 부수는 것은 당장은 악인 것 같지만 그 집이 물길을 막고 있어 수 많은 마을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지 모를 상황일 수도 있다.

세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입장은 우리의 생각과 같이 선과 악을 흑백논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이란 외부의 한 실체로 존재한다기보다 융이 말하는 이론으로 ‘그림자’같이 사람 안에 무의식적인 어두운 면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자’는 누구의 마음 속에서도 존재하는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악한 본성이다.

도덕적 붕괴를 막아주는 것은 죄성에 대한 인식인데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초지일관 변명으로 메꾸면서 자신의 ‘그림자’와 대면하길 원치 않기 때문에 위에서 보인 아버지의 태도처럼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모든 잘못은 남의 탓이라 생각하며 비난의 화살을 타인을 향해 퍼부어댄다.  이런 미성숙한 사람들은 둘러앉아 언제나 인생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고 끊임없는 불평을 늘어놓는다.

무절제와 더러움이 자식에게 있는 것으로 책임전가 시키지만 정작 그런 것들이 바로 자신들 속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파괴적인 힘이 그 자녀에게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자기성찰에 대한 부담감이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이 되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것이 악하다고 하는 죄의 근원이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 악의 기원을 하나의 발달과정으로 보았다.  일련의 오랜 선택을 통하여 오랜 시간 서서히 악해져 간다는 것이다.  부모의 충분한 사랑과 이해를 받으며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벗어버려야 할 나르시시즘을 이러한 악한 관계에서 벗어버리지 못하고 방어적이 되어 안으로 끌어안게 되면서 악한 부모로부터 도피하려다 자신도 악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보며 이게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냐며 왜 자식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안젤라는 지금도 마을 학교에서 풀타인으로 가르치며 그녀의 분노와 연민을 삭이면서 외로워 하는 아이들과 함께 먹고, 얼싸 안아주기도 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며, 함께 울고, 웃고, 가슴아파 한다.  악을 이길 힘은 사랑인데 오래 형성되어 온 악 때문에 사랑마저도 삼킨바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2004/06/03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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