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대지진으로 인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이 삽시간에 무너지면서 약 4만명이 목숨을 읽는 대참사가 일어났었다. 그로인해 오래된 역사적 유물들과 건축물들이 거의 모두 파괴되었는데 다행히 현재 구지역으로 구분되는 알화마(Algama)와 바이로 알토(Bairro Alto) 지역은 대지진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옛모습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구지역에 전형적인 식당들이 있는데 그곳 테니블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앉아있으면 포르투갈의 대표적 민요인 화두를 들을 수 있다. 화두가 어디서부터 유래됐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 말의 뜻은 운명이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공연이 시작되려고 하면 주위의 빛을 낮추어 분위기를 어둠에 잠기게 한다. 여자가 부를 때는 언제나 검은 숄을 어깨에 걸친다. 검은 복장을 하고 두 세 사람의 기타반주에 맞추어 먼 곳을 바라보든가 눈을 지그시 감고 간절히 부르는데 그 소리가 목구멍에서 끊어오르는 듯 해서 언뜻 들으면 한국의 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많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화두는 본래 17세기에 바다에 나갔던 선원들이 집 생각이 날 적마다 그리움을 나직히 읊조리던 것들이 전해지면서 바이로 알토지역에 있는 선술집에서 확실히 화두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떠난 남편을 생각하며 부르기도 했고 바다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그리며 가난만 남은 아내가 애타게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 그러니 목에서 짜내는 듯한 구성진 노래가 한이 서려있다는 느낌을 가질만 했다.
포르투갈에서 만난 역사를 전공했다는 한 스페인 여인은 아직 포르투갈이라는 나라가 형성되기 전 이베리아(Iberia) 반도는 하나였는데 한 가족이였던 부족이 형제간의 갈등을 피해 여자 한명이 멀리 지금 포르투갈에 있는 지역으로 옮겨가서 성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살다가 점점 영토를 북쪽으로 넓히면서 지금의 형태가 되었는데 스페인으로선 여간 불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이메리아 반도 남서쪽을 야금야금 밉게 잘라먹은 형태라며 하나의 국가가 되었어야 했다고 못내 아쉬워하던 그녀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면 포르투갈 사람들은 바다를 향한 부분을 빼면 마치 스페인에 둘려쳐진 기분이라며 그때 아예 북쪽으로 더 진출해서 삼면이 바다였으면 더 좋을 뻔 했다고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인스가 월드컵을 앞두고 예상되는 4강을 발표했었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이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후보였던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에게 이미 승리의 여신은 등을 돌렸다. 98년 월드컵에서 화려했던 우승팀인 프랑스가 완패한 후 조용히 사라져버렸고 심한 국내 경기침체로 돌파고가 보이지 않던 아르헨티나는 마지막 희망마저 꺽이고 울면서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6월 14일 운명의 결전이 벌어지는 날, 한국의 인천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로인해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포르투갈도 떨어져나갔다. 폴란드가 미국을 3:1로 이겼고 한국이 포르투갈을 1:0으로 이겼다. ESPN에선 누가 한국이 이기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냐며 놀라워하고 있다.
포르투갈도 선전을 했지만 아쉽게 물러서야만 했던 그들의 얼굴에서 일그러진 고통을 보며 한국의 승리에 한없이 기쁜 반면 마음 한 구석엔 작은 아픔을 느낀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선 순간의 실수는 영원히 만회할 수 없고 내가 잡지 않으면 잡히는 현실을 실감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영원한 승자와 영원한 패자도 없음을 보며 오늘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괴로움이 있으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기쁨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고, 기쁨이 있으면 혹 앞으로 다가올지 모를 슬픔을 생각하며 겸손히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겠다. 포르투갈이 애끊는 슬픔의 화두를 부를 때 우리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내일이 있다고 그들을 위로해주어야겠다.
그러나 승리는 달콤한 것이다. 현재가 없이는 미래도 없다. 16강이 아니라 8강, 아니 4강을 향해 힘껏 뛰자. 화이팅 한국을 외치며 힘찬 내일을 향해 기쁨의 함성을 질러보자. 다시 한번 외쳐본다. “장하다! 대한민국 만세!”
2002/06/16
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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