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메아리가 순하게 지나간 뒤에도 며칠째 장맛비가 이어진다.
바쁜 일 없이 한가하게 빗소리를 듣거나 유리창 너머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는 일은 내가 즐기는 감정유희중 하나이다.
특히 신록이 아름다운 날 연둣빛 뺨을 닦아주는 빗물을 바라볼 때, 초등학교 입구에서 알록달록 색색의 우산을 펼쳐들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과 꼼짝 않고 앉아 내리는 비를 다 받아준 다음날 피어오르는 골골마다 피워 올리는 산안개는 모두가 비 오는 날에 만나는 정경이다.
거기에 이어지는 사실이 장마철에 부침가루가 더 많이 팔린다는 통계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것은 비가 내릴 때 소리의 주파수와 부침개가 팬(pan)에서 지글거리며 익어가는 소리의 주파수가 일치하는데서 온다는 분석이다.
물론 과학적인 분석보다 농촌에서는 비가 오면 잠시 들일을 쉬면서 애호박이나 부추 같은 집에서 나오는 야채를 넣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정이 풍미를 더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왕 빈대떡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나는 유난히 빈대떡 종류를 좋아한다.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겨울 김장김치가 익으면 김치전에서부터 봄에 먹는 쑥부침, 애호박전, 버섯전도 즐기려니와 햇감자를 갈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를 부를까 얼굴부터 떠오른다. 해물파전이나 녹두전까지 가면 그야말로 먹고 노는 날이 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렇게 부침개는 우리를 가까이 불러 모으는 능력이 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세상사가 그렇게 만만하게 흘러가기만 하랴. 요즘 그런 취미도 날 잡아야 겨우 한 번 할까 말까 하니…
그런데 빈대떡은 좀 격을 갖추었을 때 부르는 이름이고 보통 쉽게 부르는 이름으로는 부침개라고 부르고 내가 자랄 때 어른들은 누름적이라고도 하신 기억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먹을 게 귀하고 밥 세끼 먹는 일이 힘든 시절 부잣집에서 떡을 해 먹는다고 없는 쌀에 떡을 해 먹을 길은 없고 그냥 밀가루에 이것저것 넣어 부쳐 먹으며 모양이 납작해서 빈대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혹자는 가난한 선비가 과거를 보러 먼 길을 오면서 노자도 넉넉지 못해 주막에 들러 묵을 형편도 못되면 사대문 밖에서 노숙을 했다고 한다.
그때 명문가에서 보시를 하는 뜻으로 빈대떡을 부쳐서 하인에게 들려 보내면 그것을 나눠 주면서 ‘어디 사시는 어느 댁 보시요’ 하면서 나누어 주었는데 그 후로 가난한 선비들이 먹는 다고해서 빈자(貧者)떡으로도 불렸던 것이 오늘날 빈대떡이라는 설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어려운 시절을 잘 넘기는 지혜로운 조상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나는 빈대떡이 가진 동그란 모양이 더 마음을 끈다.
살기 어렵다는 세상 서로 어떤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서로 마음 다치지 않고 모여 앉아 둥글둥글 서로 어르고 달래며 살아가면 사는 일이 한 층 수월하지 않을까
아직도 낙숫물 소리가 들리는데 누구에게 전화가 걸려오지 않으려나?
2011. 07. 05.
정진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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