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일찍 잠이 깼다. 눈을 뜬 시간이 4시 반경이다. 어제 강남에서 있었던
동생네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나름대로 신경을 썼던가 보다. 그뿐이 아니다. 예식이
끝나고 나서는 큰손자 녀석이 아비와 같이 안양 집에 와서 두 살짜리 사촌 동생과
신나게 놀다 저녁을 먹고 갔다. 그 바람에 나는 녀석들과 같이 놀아주느라 피곤한
줄도 몰랐다. 두 놈들이 좁은 집안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어 논 건 물론이다. 그래
도 이 할아비는 든든하고 그저 그놈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강남과 인천으로 녀석들을 각각 떠나 보내고 나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엄습해
왔던가 보다. 그래서 어제 밤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눕자마자 이내 골
아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아직은 쾌면(快眠)에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늘 하는 대로 먼저 물부터 한 잔 들이킨다. 상온의 보통 물이다.
나는 더운 여름이 아니면 냉수보다는 약간 따뜻한 물이 좋다. 우유도 마찬가지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찬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 체온이 36.5도다. 찬 것이 위
장을 튼튼하게 한다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장에 부담을 준
다.

내가 좋아하는 비스킷 스낵 봉지가 하나 서가에 얹혀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나는
한평생 유별나게 단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어제 손자들과 같이 먹다 남은 에이스
다. 조그만 봉지에는 여섯 잎이 들어있다. 에이스를 보면 커피가 생각난다. 교육심
리학 책에서 읽었던가, 이런 현상도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Pavlov)가 주장하
는 조건반사설의 원리 때문인지.

주전자에 물을 따라 붓고 레인지 위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내가 마시는 커피는 비
싼 원두 커피 같은 게 아니다. 나는 술에 대해 문외한이다. 그렇듯 커피에 관해서
도 상식마저 없다. 내가 마시는 커피는 아무나 흔히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믹스 정도
다. 그것도 좋다. 나는 아직 커피 맛을 모른다. 어쩌면 남들이 마시니까 그냥 따라
마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커피 맛도 커피를 마시는 멋도 모른다는 말이다. 남이 장
에 가는 데 거름 지고 따라가는 격인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자발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남들이
권하는 경우 어쩌다 마지못해 받아 마셨을 따름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게 아니
다. 요즘은 삶의 방식은 물론 내 식성까지도 자꾸 바뀌게 됨을 스스로도 체험한다.
커피와는 백촌이 넘는 사람인 내가 커피를 다 마시게 되다니, 이것도 내게는 천지
가 개벽한 이변(異變)이라면 이변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막말 할 것은 못된다.
젊었을 때부터 난 보리차나 냉수를 즐겨 마셨지 청량음료나 커피는 내가 가까이 하
기엔 너무도 먼 당신이었다. 그 이유는 그것들은 사먹을 형편도 못되었거니와 나로
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사치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2학년 시절이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아름다운 교사
(校舍)가 대구대학 옆 대명동 언덕배기에 있을 때였다. 지금은 대구고등학교가 되
어 있다. 어느 월요일 아침 전체 운동장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께서 훈화 중에 커
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김영기 교장 선생님이시다. 그 분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학교 시절 은사로서
박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던 분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다. 노년에는 서울에 사
시면서 교육위원으로서도 활동을 하시는 등 우리나라 교육계의 원로로서 막중한 역
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교장 선생님은 성품이 소박 검소하시고 매사에 철두철
미하신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로 그야말로 우리들의 사표(師表)가 되시고도 남을 분
이셨다. .

그때만 해도 커피가 지금처럼 우리 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지는 않았던 시절이다. 다
방이라는 게 막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고, 돈 푼이나 있고 행세께나 하는 사
람들, 룸펜들, 연인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찾아 그런 곳을 드나들며 비싼 값의 커
피를 마시는 바람직하지 못한 낭비적 풍조가 유행처럼 만연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
다.

교장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사회풍조가 몹시 못마땅했고 따라서 거기 대해 가차 없
는 비판을 가하셨던 것이다. 왜 사람이 비싼 밥 먹고 할일 없이 다방에 나가 붕어 새
끼처럼 진종일 커피만 마셔 대면서 시간을 죽이고 앉아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 기
억이 정확한지는 몰라도 그 때 커피 한 잔 값이 30원가량이었던 것으로고 알고 있
다. 그 돈이면 시내버스를 여러 번 탈 수 있을 만큼의 거금(?)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하신 그때 그 말씀은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것이 계
기가 되어 그때부터 죽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커피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는 지도 모
르겠다. 그래서 과거 우리 집에는 오랜 세월 아예 커피라곤 어떤 형태의 것도 존재
하지가 않았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한 세상이 된 지가 이
미 오래다. 들에 나가 일하는 시골 사람들도 커피를 시켜 마시는 오늘이다. ‘성인(聖
人)도 세속을 따른다’는 말이 있다. “로마에서는 로마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Do in Rome as the Romans do.)고 했다. ‘입향순속(入鄕循俗)”도 같은 의미의 말
이다. 하물며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에 충실한 나 같은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아직 맛도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면서 설탕과 프림을 섞은 소
위 말하는 ‘다방커피’를 가끔은 마시게까지 되었다. 사람 팔자는 길들이기 나름이
다. 그렇더라도 세상풍조에 무작정 휩쓸리기보다는 나는 내 방식대로 느긋하게 살
아가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여생을 살고 싶다. 백 사람, 천 사람이 가도 내가 판단
해 봐서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던 게 젊은 날 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에 뾰족하던 모서리가 많이 깎였는지 지금은 둥글둥글하게 사는 것
도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건 단순히 늙는 것이 아니다. 익어가고 영글
어가고 원숙해지는 과정이다. 이마의 주름살은 자랑스런 내 인생 계급장이다. 그래
서 그만큼 여유가 있는 삶을 즐기게 되는 것인가.

2011. 03. 28.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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