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한 정치인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을 차도남(차가운 도시의 남자)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요즘 차도남이 대세이다 보니 자신도 매력적인 남자라는 뜻으로 농담을 한 것이겠지만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정치인은 차가운 사람이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차도남,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이란 단어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차갑고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성향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까칠한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까칠해도 용서가 되는 그 배경이 좋은 것이다.

최근 들어 인기있는 드라마에는 모두 까칠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은 무능하게 그려진다. 그래서 착한 건 바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착하고 따뜻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소외를 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도 성격 참 좋다는 소릴 듣는다. 표정이 밝고 긍정적이고 친절하다고 칭찬을 받는다. 이런 칭찬이 나한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나는 휠체어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중증의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장애인은 장애 때문에 생긴 열등감으로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한 까칠함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장애인이 잘 웃고 친절하면 칭찬거리가 된다.

어렸을 때는 그런 칭찬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성격이 좋다는 칭찬이 고맙다. 내가 그런 대로 잘 살아왔구나 싶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런 성격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나 나름대로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살다보면 미운 마음이 생긴다. 미운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말을 함부로 해서 밉고, 잘난 척을 해서 밉고, 자기만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아서 밉고, 나를 서운하게 만들어서 밉고, 미운 이유는 다양하다.

음식이 싫으면 안 먹으면 되고, 옷이 싫으면 안 입으면 그만이고, 물건이 싫으면 안 쓰면 그뿐이지만, 사람은 물건처럼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다.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그 관계를 단칼에 베어버릴 수가 없다. 싫든 좋든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움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좋은 점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칭찬을 해주는 것이 좋다. 칭찬을 하다보면 미운 생각이 정리되면서 조금씩 좋아진다.

나는 모든 생활을 오롯이 남한테 의지해야 살 수 있다. 내 손으로는 물 한컵 갖다 먹을 수가 없다. 만약 내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겼다고 화를 낸다면 난 목이 말라도 물을 마실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화를 낼 수가 없다. 난 무조건 참아야 한다. 늘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고 잘했다고 칭찬해야 살 수 있다. 이런 내가 비굴하게 느껴지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성격이 좋다는 칭찬을 들을 때가 많다.

난 정말 사람들을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아니 이해하려고 애쓴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사람의 행동을 나와 연관시키지 않고 객관화할 수 있어서 나는 그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사람한테 상처를 받는 것은 바로 이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미명 아래 서로를 구속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으면 배신감을 느끼며 분해하고 증오하게 된다. 이런 배신, 분노, 증오, 복수가 우리 삶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몹시 고단하게 살고 있다. 이 고단한 인생에서 탈출하기 위해 여자든 남자든 신데렐라를 꿈꾸는 것이다. 그런데 신데렐라의 왕자님이 차도남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자들이 차갑고 까칠한 남자를 로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난 차도남이 싫다. 차가운 남자의 사랑에는 진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어려운 사람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난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좋다. 가슴이 따뜻하다는 것은 고통을 감싸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온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에게 열광해야 한다.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한다. 그래야 외모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배경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비합리적인 발상이 근절된다. 그래야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사람의 향기를 뿜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아서 까칠한 것은 멋있다고 하면서 장애인의 까칠함은 열등감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가진 사람이건 장애인이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불쾌감을 준다. 사람을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으로 구분해서는 안되듯이 장애가 있다고 다르게 봐서는 안된다. 사람은 사람인 것으로 위대하다.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난 위대하기까지 한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좋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545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