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民

고마운 지적일세.
제목을 일단 “閑中忙”으로 생각하고 “망중한”을 찾아보았더니
의외로 “망중한”이란 말이 우리말 사전에 나와 있었네.
그러니 적어도 날조어(捏造語) 신세는 면한 셈일세.

그리고 “生卽事”라 한 것은 生卽動, 生卽愛, 生卽學 등의
가벼운 의미로 쓴 것일세. “生卽死”야 원래 人口에 膾炙되는
유명한 문구가 아닌가.

또 “말 타면 종 노릇하고 싶어한다”는 표현은 이 문맥으로 보아 내가
임의로 뜯어고쳐 만든 날조어일세. 그야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말을 모르고 쓴 것은 아니었네.

아무튼 적절한 지적이었으니 참으로 고맙네.
팽이는 채로 계속 때려야 돌아가는 법일세.

글이든 예술작품이든 작가는 그가 만든 결과물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게 그들의 人之常情이 아닐까 싶네.

채 드시는 수고 앞으로도 부탁하네. 그런데 이 채는 아무나 들 수도 없는 일.
아무리 상식적이고 쉬운 것이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들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특히 내게는 그런 현상이 심한 것 같네.
그러기에 내 곁에는 채를 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형국일세.

그래서 나의 안타까운 이런 심정을 토로하면서 쓴 글이 얼마전 보낸
“兵家之常事”였네. 글을 써보면서 거듭 절감하는 것은 내가 우리말을
정말 너무도 모르고 있구나 하는 사실일세.

써보면 써볼수록 우리말이 참으로 아름답고 훌륭한 말이란 사실이 터득이
되어짐을 알 수는 있는 것 같네. 이런 훌륭한 우리말, 우리글을 조금이라도
바르게 쓸 줄 알아야 겠다는 의무감과 무식의 죄책감에서 무턱대고 쥐나
개나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그냥 써보고 있는 것이 작금 나의 행태일세.

소 발에 쥐 잡는 격으로 쓰다 보면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도 어쩌다
나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아도 손해 볼 일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일세.
일단 아무런 부담감 없이 자유롭게 운신(運身)을 할 수가 있어 좋다할까.
위신, 체면, 허영 등의 사치스런 말들은 지금의 내겐 더 이상 힘을 잃었네.

생각은 자유라 했던가. 당연한 말이지. 그러나 일단 자기 생각을 남에게
드러내 보이게 되면 그때부턴 문제가 좀 달라지는 것 같네. 그래서 두 번 ,
세 번 생각을 해보게 되고 신중을 기하고 美, 格, 品位 등을 생각하게 되는지.

원래부터 사람에겐 표현의 염원 같은 게 있는 것인가. 그래서 “언론의 자유”
를 인류는 진작부터 중시해 왔음인가. 욕망, 애정, 증오,혐오, 감탄 등 갖가지
희노애락의 감정과 느낌을 그러기에 시인이, 소설가가,수필가가 글을 통해
표출하고 있는 것인가.

좋은 글,아름다운 글, 지혜가 담긴 글, 무게 있는 글, 감동을 주는 글, 진리를
알리는 글이 만약 없다면 우리 인간의 삶은 어떻게 될까. 책이 글이 없이도
세상은 존재할 수 있을까. 오아시스도 달도 없는 사막과 암흑의 세월을 살아도
좋을까.

오늘날 지구촌의 공용어가 되다시피한 영어를 보자. 영어를 보급하고
발전시킨 공로자가 많지마는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사람이 있다. 영국의
극작가 섹스피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글을 쓰기를 염원하는 것인가.
나도 그런 흉내라도 내보려는 건가.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 욕심까지야.

愚民, 사설이 길어졌네.
다 양해해 주시리라 믿고 늘어놓은 허언(虛言)들일세.
한 해를 하루 남겨 둔 시점일세.
새해엔 우리 더 밝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만나세.

2010. 12. 30. 18:40

安養  飛山洞 林谷齋에서/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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