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귀한 사람들을 만난 너무도 행복한 하루였다. 집사람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났고 점심 한 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주인공들은 지금으로부터 40년 가까이 전 꿈 많던 여고시절 3학년 졸업반 학생들
이었고 불초본인이 그들의 담임을 맡았던 사랑스런 두 사람, 나의 귀여운 제자들
이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이고 반가운 만남의 순간이었던 터라 그 큰 기쁨과 환희
와 의미를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이 시각까지도 나는 그 감회를 주체할
길이 없다.

말이 40년이지 그 사이 흘러가버린 무심한 세월은 결코 녹록찮은 기간이었음에
틀림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거늘 강산이 변해도 한 번이 아니고 네 번
이나 변했을 세월이었으니, 이것은 어쩌면 천지가 개벽할 만큼의 기나 긴 세월이
아니었던가. 견우직녀(牽牛織女)의 만남인들 어디 이 오늘 우리들의 만남, 제자와
스승과의 만남보다 더 의의(意義)가 있고 반가웠으랴. 이 만남은 어쩌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들과 나의 생이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일이고 보면…….

“눈에서 멀면 마음에서도 멀다.”(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정다웠던 사이라 할지라도 멀리 떨어진 채 마주 대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그것도 하나의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되고 마는 법이다.
사람 마음이란 한없이 굳기도 한 것 같지만 다른 한편 형편없이 헤플 수도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와 나의 제자 두 숙녀들과의 만남은 그런 상식선을
훌쩍 뛰어넘는 각별한 만남이었노라 나는 감히 단언하고 싶다. 아전인수격인
해석이라 할지 모르나 나는 적어도 그렇게 확신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굳이 말이
필요가 없다. 이심전심 얼마든지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분명코 이 점에 있어서 만은 나의 느낌이나 감격을 남들의 평가에 맡기고 싶지가
않다.

그들은 아득한 그 옛날 내가 그토록 귀여워했고 사랑했고 아끼던 제자들이었다.
그들 앞에만 서면 나는 항상 행복했고 열정이 솟구쳤고 신이 났다. 그래서 그 시절
그들과 함께 했던 나의 교단 생활은 그렇게도 즐거웠고 보람이 있고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으로 각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에서 떠
날 줄을 모르는가 보다.

그 때의 그 주인공들 가운데 두 사람을 오늘 졸업한지 처음으로 다시 만났던 것이
다. 그것도 그 때 그 고장에서가 아니고 머나먼 타향, 서울의 어느 하늘 밑에서.
야속한 세월 탓에 그들도 이미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들었단다. 그러나 내
가 보기에 그들은 여전히 곱디고운 나의 제자들이었고 우아하고 원숙한 숙녀들이
었다. 난 고희를 넘긴 할아버지가 된 세월이 이미 오래지만. 이런 아름다운 만남
보다 더 감동적인 드라마 장면이 어디 있기나 한가. 이것은 각본에 의한 연출이
아니요 엄연한 실제상황이었음에랴.  어느 방송에서였가에서 방영했던  “TV는
사랑은 싣고”라는 인상적인 만남의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이 순간은 나도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작품세계에서처럼 “의식(意識) 흐
름”(the stream of consciousness)을 따라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아득한 옛날
나의 병아리 적 교단생활이 겨우 2년차로 접어들던 해였다. 1967년 5월 20일경
나는 그들과 운명적으로 처음 만나게 되어 선생과 제자라는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 년 반 가량 우리는 함께 신나게 공부를 했고, 그 뒤 기구한
운명(?)으로 수 년 동안 서로 헤어졌다가 그들이 고등학교 3학년 진급을 하던 해
1971년 3월 새학기부터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 나이 20대 종반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고 30대 초반에 재회를 한 셈이
다. 나는 이들의 고3 담임을 맡았고 당시 그들의 지상과제였던 대학입학예비고사
를 위한 그 유명한 합숙훈련 작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그 해 그들과의 공부는
예정대로 마쳤고 우리 학교로서도 일약 명문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할 만큼의
대 성과를 거양했던 것이다. 이것은 결코 나의 공을 내세우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단지 그들의 도우미 역할만 한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학입시
반 당담교사로서 나의 할일을 했을 뿐이다. 나의 지시를 묵묵히 따라 준 성실한 학
생들과 그밖의 관계자들이 실질적인 공로자들이다.

한 가지 그들에게 미안한 일은 담임교사였던 내가 내 손으로 직접 그들의 대학입
학원서를 써 주지 못하고 그 다음해 1월 초 해외 연수차 먼 나라로 유학길에 올라
야 했던 일이다. 어제 이 두 사람을 만난 것을 계기로 이런 지난 일들을 겨우 어렵
게 기억해 내자니 무수한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내머리를 스치지나간다.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니다.

인생살이가 과연 어떤 것인가. 이런저런 소중한 인연으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무수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 가운데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속에서
질서를 지키고 자기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아닌가. 한 평생이라는 인
생여정에서 보면 우리가 흔이 말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법칙만 있는게 아니
다. 그 반대인 이자정회(離者定會)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법이고 그것 또한
너무도 소중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굳이 이별을 서러워할 것도 못 되는 게 아닌가.

난 원래 머리가 둔한 탓인지 옛날에 있었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일들을 깡그리 잊
어버리고 지내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럴 때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한심하기도
하려니와 오랜만에 과거 함께 했던 시람들과 만나 지난날을 회상할 때면 상대편에
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안타깝기 이를 데 없기가 부지기수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오늘 만난 두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은 비교적 뚜렷한 편
이었고 따라서 그들과 함께 한 몇 시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즐겁기만 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옛날 그들에 대한 교사로서의 나의 열정과 사랑과 기대가 그만
큼 컷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반드시 맞는
것 만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도 함께 자리한 집사람에게도 실오라기 만
한 실망도 없었으니 말이다. 청출어남(靑出於藍)의 의미를 생각하고 즐거운 회상
으로 다시 젖어든다.

2010. 12. 18.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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