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日養兵, 一日用兵

*김규 예비역 공군 소장*

군에 대한 질타가 계속되고 있다. 적에 대한 분노보다 더 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천하장사도 뒤통수 기습 공격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전쟁은 기습으로 시작된다.

북이 도발하면 제압하겠다더니 왜 그 모양이냐고 힐책한다. 군이 잘못
대응한 부분이 있다. 대응 포격이 늦어 적 포대가 피한 뒤에 이뤄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나마 제대로 맞히지도 못한 것 아니냐는 질책이 이어진다. 천안함 피격 이후 여러 달이 흘렀는데도 준비 없이 또 당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 10여년 이상 북이란 비정상 집단을 정상 국가로 치부해온 잘못된 패러다임을 갑자기 바꾸고 대비하자니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민이 명확한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 적을 완전히 제압하라고 명령했다면 군은 비록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신념으로 복명(復命)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평도가 공격당했을 때 정부와 국민은 증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는 않았는가. 병사와 민간인의 희생을 남의 불행 정도로 치부한 사람들은 없었는가. 굳은 의지가 아니라 탈출에 줄을 서지는 않았는가. 우리 사회의 이런 분위기가 군에도 스며들지 않을 수는 없다.

국민은 그동안 엄청난 국방 예산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강군(强軍)은 돈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정신력이 중요하다. 군은 명예를 먹고 사기로 싸운다. 군의 명예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그런데 전임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나라”라고 매도하고, 군대를 “젊은이들 썩는 곳”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가.

인천시장은 북의 연평도 공격을 “우리 군이 포사격 훈련을 하여 자극받은 북이 공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하면서 “군 관련 시설은 산속에 들어가야지 민가에 나와 있으니 주민들이 불안해한다”고 했다. 북이 “민간인 사망은 남측이 포진지 주변과 군사시설 안에 민간인들을 배치한 비인간적인 처사가 원인”이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군의 사기는 존재를 인정받을 때 높아진다. 그러나 장군들을 모아 놓고 “북은 적이 아니다”고 교육하고, 군사 시설은 작전개념도 없이 개발을 내세워 도시로부터 산속으로 내팽개쳤다. 일부 학자들은 군을 민중과 대립되는 평화의 걸림돌로 비하하여 장단을 맞췄다. 군의 사기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이런 군이 7개월 시한에 준비해야 했다. 군에는 ‘천일양병 일일용병(千日養兵 一日用兵)’이란 금언이 있다. 하루 써먹기 위해 천 날 동안 훈련한다는 뜻이다. 강군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좌파 정권의 근거 없는 평화 논리와, 그것이 만든 매너리즘이 군의 곳곳에 스며 있어 이를 일신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내부의 세력부터 사라져야 한다. 군의 명예심과 사기는 그 바탕에서 자라날 수 있다. 연평도 주민 이기옥(50세)씨가 “부모를 모시며 이곳을 지키는 게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해 탈출하지 않고 남았다”고 했다. 그 어떤 말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2010. 12. 06.

422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