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는 전 인생과정을 통해서 볼 때 우리가 맞이하는하루하루는 모두가 다 처음 대하는 날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는 일 또한 다 새로운 일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미 어제가 아니요,일의 주체인 나 또한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I am not what I was any more.)

흔히들 우리는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판에 박힌 일과를 일컬어
“다반사”(茶飯事)니 영어로는 “daily routine”이니 라고들 하나,
명칭이야 그대로일지 몰라도 그 일들의 내용이나 방법, 시간 등에 있어서는 각기 의미나 성격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그런 틀에 박힌 일과들이라도 다 꼭 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내가 어찌 어제와 꼭 같은 일을 할 수가 있겠는가.

시간 개념을 말하는 데 있어 우리는 크게 현재, 과거, 미래 세 가지로 나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시간에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 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현재가 없는 과거가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다면 미래 또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간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내가 존재하는 유일의 현재 시간이다. 내가 숨을 쉬고 있고, 사유(思惟)하고 유형무형의 생산내지 창조적 활동을 하고 있는 시간은 오직 현재뿐이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과거와 미래를 도외시(度外視)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유(事由)가 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과거와 미래를 떠나서는 현재를 논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는 오늘의 토대요 바탕이요 배경이요 거울이다. 미래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내일이며 꿈이요 소망이요 희망이요 비전이다. 그러기에 실시간(實時間)이 아닌 과거와 미래도 개념상으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현재가 있게 하는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의 미래인 현재의 오늘은 남은 인생에서 항상 우리가 맞이 하는 첫번째 날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과 오늘 우리가 하는 일체의 행위나 활동은 모두가 하나하나 다 새로운 것들이다. 사람들은 의례 첫번째 것, 새로운 것은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밖에 모든 첫번째 것에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도 된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餘生)에서 첫번째 날이다.) 그러할진대 오늘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날인가. 당신의 남아 있는 생애에서 첫번째 날이라니. 어떤 경우에나 첫번째 날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래서 우리는 첫번째 날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생일이 중요한 것 또한 그 날이 당신 생애의
첫 번째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여생의 하루하루는 모두가 우리의 생일이 되는 셈이다. 남은 인생의 첫번째 날이니까.

나는 위의 이 말이 우리말로서가 아니라 영어로 쓰인 것을 처음 보았다.그 때 나는 속으로 “아차, 과연 그렇구나” 하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평범한 내용의 이 말이 지닌 의미를 그때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생각해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오래전 1972년 말경 뉴질랜드(New Zealand)에 있을 때 처음 보았다. 내가 과문(寡聞)한 탓이었겠 으나 그 이전에는 나는 이 말을 아무데서도 본 적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그 나라 뉴질랜드는 가난했던 우리에게는 지상천국이니 지상낙원 등의 수식어로 유토피아라고 알려진 평화롭고 부유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나라였다. 그 때 그 시절 나는 그 나라의 수도 웰링턴에 체류하면서 빅토리아 대학(Victoria University in Wellington)에서 국비유학생으로 일년 동안 영어교사 연수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웰링턴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 구내에 있는 은행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창구(窓口)인가 어디에서 그 말이 조그마한 글씨로 쪽지에 써져 붙어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던 것이다. 그 순간 그 영어문구는 아마 내 머리 속에 영구기억으로 각인이 되었던 모양이다. 거기 머무는 동안은  한창 바쁘게 공부에 쫓기는 중이라 잠시 그 말을 잊고 있었는데 십여 개월 후 귀국을 해서 다시 교단에 서게 되면서 영어시간에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교사시절 새학년 새학기가 되어 처음 들어가는 수업 수간에는 거의 예외 없이 학생들에게 먼저 이 말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를 소개하는 것으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견례가 끝나는 즉시 나는 곧장 돌아서서 흑판에다 비교적 커다란 글씨로 또박또박 이 영어문장을 쓴다. 그러면 학생들은 자연히 쥐죽은 듯 흑판을 주목하게 된다. 생각해볼 시간을 충분히 주고 난 다음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곤하는 것이 순서였다.

먼저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그들의 영어공부를 책임진 교사인 나와 그들 학생들과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는 동시에 앞으로 영어시간에 임하는 그들의 각오를 다지게 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은 학생과 교사 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공동 작업의 일환이기도 한 것이다. 학생들로부터의 무한한 신뢰, 그것이 교사로서의 생명이다.

지금은 이 말이 전혀 새로운 의미의 말이 더 이상 아니다. 인구에 회자(膾炙)되기 시작한 지가 이미 오래된 것으로 안다. 이 말은 어떤 재미 있는 격언이나 속담도 아니다. 이 말은 평범하지만 하나의 진리다. 진리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의미가 어려운 것은 더구나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고, 그 말이 지닌 의미대로 그들이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일찍이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나의 가르침을 꼭 붙들고 있으면 진정 나의 제자가 될 것이요, 그 때에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장32절>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라는 유명한 말씀을 설파하셨다.

평범한 진리인 이 말에 얽힌 사연을 이처럼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이 날 오늘은 나에게도 역시 나의 남은 인생에서 첫번째 날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이 오늘이 또 새로운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신이 나고 또한 살 맛 나게 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맞이하고자 한다.

2010. 11. 29.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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