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깊었네-

4계절 중에서 가을이 유난히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드는 듯합니다.
고산 윤선도의 시조 한 수를 이 가을에 한 번 읊어 보시지요.

꽃은 무슨일로 퓌면서 쉬이지고
풀은 어이하여 푸르는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 아닐손 바회뿐인가

이 시조 한 수는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함을 읊은 것은 사실입니다.
젊음이 늘 있습니까. 미인이 언제나 미인입니까. 누구는 한 때 젊지 않았던가요.
나도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한 오라기도 없었습니다.
그 검은 머리가 숯도 많고 웨이브도 있어서 보기 좋았는데 오늘은 내 머리에
흰 서리 뿐입니다. 눈도 좋아서, 시력검사를 하면 양쪽 눈이 한결같이
‘1.2, 1.2’였는데 돋보기를 안 쓰고는 책을 못 읽는 노안이 된지도 오랩니다.

미인도 별 수 없습니다.
절세미인으로 알려졌던 여인도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그 미인의 눈언저리에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면, “미인 끝” – 주름 잡힌 미인이 어디 있습니까.
다 덧없는 한 때의 자랑일 뿐, 가을바람을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정권 잡은 사람들, 너무 교만하지 마세요, 가을인데!
그 권력도 앞으로 2년 뒤엔 끝납니다. 돈 가진 사람들, 너무 돈 자랑 마세요,
이 가을에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을인데! 그 돈, 그 기업, 앞으로 50년 뒤에 누구의 것이 될지 누가 압니까.
각계각층에서, “내가 제일이다”라며 기고만장한 사람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가을인데! 역사에 남기는 어렵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여, ‘북풍한설 찬바람’이 두렵지 아니한가.
가을이 깊었습니다.

– 김동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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