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집에 가만 있어도 숨이 턱에까지 차오를 지경인 혹서의 한복판 팔월 중순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오늘 하루는 이상하리만치 왼종일 날씨가 서늘하기만 하다. 우선 숨을 돌릴 만해서 좋다. 엊그제서부터 며칠을 내리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이따금씩 소나기를 퍼붓더니 그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오랜만에 샤워를 하지 않고 잠을 청해도 될 듯하다.

하기야 입추, 말복 지난 지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벌써 열흘이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요새야 어디 그 절후인들 옛날처럼 제대로 믿을 수가 있겠던가.  우리 조상들은 절기만 믿고도 한해 농사를 짓고 준비도 했다. 태양의 황경(黃經)에 맞추어 1년을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해서 계절을 구분한 것이고 보면 절기가 정확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계절도 절후도 믿을 수 없겠금 된 세상이다. 이상기온 탓이란다. 겨울이면 이상난동현상이라 해서 겨울이 없다고들 하지를 않나, 때아닌 여름 우박으로 다 지은 농사 망치는 일이 없나. 지구 한쪽에선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닌데 다른 한쪽에서는 홍수로 물난리를 겪지를 않나, 하여튼 종잡을 수 없는 게 지금의 지구촌 날씨요 기후다.

이게 다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니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지형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패턴의 기후대에 놓여 있어서 인지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적은 없었다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이제는 하늘만 쳐다보고 살 수만은 없게 됐다. 국방에만 유비무환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삶의 구석구석에까지 이런 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선 4대강부터 정비를 한다는데 그것도 다 유비무환의 일환일 게다.

젊을 땐 모르겠더니만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새로운 걱정거리 한가지가 더 생겼다. 그게 바로 더위와 추위 걱정이다. 젊을 때야 이런 걱정은 할 겨를도 없다. 왕성한 혈기로 웬만한 추위나 더위 정도는 거뜬히 이겨내고도 남는다.  나이 들고 보니 그게 아니다. 피가 식어가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민태원은 그의 청춘예찬에서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있다.” 고 젊음을 예찬했다.

뉴욕에서 살 때의 일이다. 나는 다 큰 손자와 몇 년을 같이 한집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추운 겨울이면 나는 실내에서도 두꺼운 점퍼를 입고 있어야 하는 데도 녀석은 노상 팬티 바람이다. 아이들의 피는 뜨겁다. 그래서 건강하다. 젊음은 생명이요 창조의 원동력이다.

요즘은 노인들 가운데 추위로보다는 더위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보도를 통해 종종 듣고 있다. 세상사는 자기가 당해봐야 안다. 왜 그런가를 이해할 만 하다. 더위와의 전쟁이다. 전쟁은 싸움이다. 어떤 싸움이든 싸움에서는 무조건 우선 이기고 볼 일이다. 지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승리하기 위해 우선 정신적 유비(有備)가 필요하다.

매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나라 여름 더위가 어떻고 열대야가 어떻고들 부산을 떨고 있지만 이는 모두가 포시라워(?)서 하는 소리다. 아직도 사계절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여름에 이런 정도의 더위가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농사는 어떻게 짓겠으며 산야의 초목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 더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시는 축복이요 은혜다. 이 정도의 더위는 기꺼이 참고 견뎌내야 한다.

오늘은 날씨가 당장은 시원해서 좋다만 내일부터는 다시 또 불볕이 쨍쨍 내리쬐야 한다. 그래야 벼가 영글고 채소가 자라고 과일이 익는다. 그래도 더위를 탓해야 겠는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십년은 고사하고 더위의 위력은 고작 한 철뿐이다. 우리는 이 더위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사생결단의 정신으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위기가 찬스라는 말이 있다. 남들이 모두 피서다 휴가다 해서 긴장을 풀고 일손을 놓고 있을 때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보다 앞설 수 있다. 남들 놀 때 다 같이 놀면 어떻게 남들보다 앞설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살 길은 더 많은 땀을 흘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나중에 눈물과 피를 흘리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서늘한 여름 날이 결코 반길 일만은 아니다. 나이든 어르신들이여! 우리도  등에 땀 흘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을 지킵시다.

2010. 8. 17.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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