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야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상의 네 목소리구나.
사람에게는 저마다 남과 같지 않은 점들이 많다만
그 중 하나가 목소리다. 난 방금 짧막한 몇 마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의 긴 여운을 남기는 네 목소리를 들었다.
네 얼굴을 내가 잊지 않고 있듯이 네 목소리도 잊지 않고 있다.
영구 기억의 하나로 내 머리 속 칩(chip)에 입력(input)이 되어 있다.
“목소리는 제2의 얼굴”이라 했다.
한 두 마디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현재 상태 거의 모두(?)를 읽어내고
파악할 수가 있는 거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들은 늘 서로 만나 육성을 듣고
싶어하는 목마름에 애태우고 있는 것인가.
때로는 그것이 어느 한쪽의 짝사랑일수도 있겠다만, 그리운 사람의 그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말이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은 전화로나 인터넷 상으로도 얼마든지 가능은 하겠다만
그래도 시선을 마주하고 입김을 주고받고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만남,
face to face meeting이라야 그게 진정한 만남 아니겠느냐.
사람에게도 물론 歸巢本能이 있다만 그것은 단순히 그 땅, 그 곳, 그 지역의
山河만이 그리워서가 아닐 게고, 그 옛날 거기서 함께 했던 喜怒哀樂의 옛 정이
그리워서 일 게다. 거칠어진 손, 주름진 얼굴, 성긴 머리카락의 주인공들이라도
그래서 더 보고 싶은 게 아니겠느냐.
지금은 방학이겠다. 그간 잘 지냈느냐.
No news is good news. 이리라 믿고 지낸다.
그렇지 않아도 메일 [수신확인]을 통해 네 근황을
혼자 짐작은 하고 있다. ‘요사이는 매우 바쁜가보다.’
아니면 어떤 때는 ‘좀 한 숨 돌릴 여유가 있는가’ 등으로 말이다.
아직은 바쁠 때다. 바쁠 때가 좋다.
그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다.
언젠가는 바쁘고 싶어도 바쁠 수가 없는 그런 날도 온다.
그렇게 되면 오죽 좋겠느냐 싶기도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더구나.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 놋다
갑자기 길재와 왕방연의 옛시조가 생각나는구나.
청산(靑山)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蒼空)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욕심(慾心)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바람같이 구름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한손에 가시쥐고 또 한손에 막대들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 길로 오더라.
상상의 나래는 끝이 없다. 나옹선사와 우탁의
글도 연어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만…………….
제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가 몸소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들이
우리 삶에는 많은 법이다. 한 해 한 해 연륜이 거듭됨에 따라서만 되는 것이지.
연륜 만큼 사람은 대체로 더 원숙해져 가고 원만해지는 것이다.
지난 날을 되돌아보게도 되고, 세상 보는 시야도 더 넓어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더 겸손해지고, 자신을 내려놓게 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이해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사람을 대하게도 되고, 친절하고 ,양보하고 용서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스승은 세월이겠다.
보라야, 사설이 또 길어졌지?
나도 이젠 영락없는 늙은인가 보다.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지, 내가 노인이라니….
그럴수록 사람의 길, 사람의 도리 생각하며 열심히 진지하게 살자.
오늘은 지하철 타고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가서 더위도 피하고
책도 좀 읽어야 겠다.
책 읽지 않는 사람 치고 된 사람은 없는 법이다.
명심보감에서는 <지극한 즐거움 중에서 책 읽는 것에 비할 것이 없고,
지극히 필요한 것 중에 지식을 가르치는 일 만한 것이 없다>.
고 했다.
2010. 8. 6. 아침
안양 임곡에서 /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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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riginal Message ] ———-
Subject: 제목없음
Date: Thu, 05 Aug 2010 11:33:47 +0900 (KST)
From: “┗보라공주┓
To: “김영대” <namdo1939@paran.com>
선생님!
잘 계시죠?
항상 좋은 글귀~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곳을
보내 주셔 더욱 감사함을~`
휴대폰 번호 , 전화 번호는 ?
올해 새 학교로 옮겨 1학기는 정신 없었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선생님이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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