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적 혈육’을 만나는 행운
-이정근-
“그 머리 스타일, 안 되겠어. 전혀 어울리지 않아.”
며칠 전 머리 스타일을 과감하게 바꾼 내게 직격탄이 날아왔다.
몇년 만의 변신인지라 보는 이마다 예쁘다, 몰라봤다,
한마디씩 보태며 와글와글 유쾌했었는데….
내가 존경하는 분과 좋아 따르는 분,
유독 두 분만이 예전 스타일로 돌아갈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내가 하는 일, 성격,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누군가의 단점 혹은 섭섭해 할 말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의례적인 인사와 형식적인 몸짓이 앞장서는 사회적 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이 상관없이 자식은 보호 대상이라 믿는 엄마의 심정이 아니고는,
장·단점을 정확히 짚어내주는 멘토의 신뢰가 아니고는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두 분의 의견도 기분 좋게 다가왔다.
나를 바라보는 깊은 시선 밑에 깔린 두툼한 애정을 아는 까닭이다.
문득 대학 신입생 시절 사주풀이에 꽤 밝다는 선배가 내게 선문답(禪問答)처럼 던진 말이 떠오른다. “넌 엄마가 많아서 참 좋겠다.”
그 말은 스무 살 언저리의 미욱했던 나를 불안한 상상과 수많은 의혹으로
덮인 불면의 밤에 빠지게 했다.
오랜 시간 후에야 육신의 엄마는 한 분이지만 정신의 엄마,
즉 나에게 삶의 지혜와 깨어 있는 길을 안내해주는 수많은 멘토가 있음을
미리 알고 귀띔해준 것이라 해석하며 스스로 축하하는 것으로 그 기억을
회복했었다.
애정과 신뢰를 전제로 한 말은 진지한 자기 성찰로 안내하여 내면의 무한
성장을 돕는다. 관계의 풍요로움은 덤이다.
그러니 내게 정신의 혈육이 많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랴.
다시 한번 거울 속 나를 바라본다.
괜찮은데….
그래도 미장원에 다녀와야겠다.
–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미디어위원장 –
**************************************
372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