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주일 동안 머물렀던 넉넉하고 푸근한 대구 인심, 특히 무계 자네와의 아쉬운 우정을 빗속에서 뒤로 한채 기어코 거기를 떠나오고 말았네, 경주 사돈과는 신서동 아파트에서 역시 우중 작별을 고했네. 그날 저녁 늦게 비가 오는 가운데 경산 갔다가 이내 나와 남산동 표구점에 들러 액자 찾은 다음, 다섯 식구가 솔군하여 상경길을 채촉한 결과 새벽 2시경 안양 寓居에 무사 귀가를 했네. 도중 휴게소에 들러 몇번을 쉬기도 했다만 출발부터 도착까지 계속 雨中이라 긴장의 끈을 잠시도 늦출 수 없는 가운데 교대로 운전을 하면서 와야 하는 아슬아슬한 좋은(?) 경험도 했네.

고향 가면 고향이 좋아 떠나올 때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만, 일단 올라와 현실에 부닥치면 또 적응을 하게 되는 걸 보면 나뿐이 아니고 우리네 삶의 행태가 다 그런게 아니겠나 싶네. 바로 이런게 適者生存의 법칙인지도 모르지.

수십 년을 살았던 정든 고향 대구에서의 집이 어쩌다 없어지고 늘그막에 산 설고 물 설은 낯선 땅 경기도까지 흘러와서 거처를 정하게 되다니 본인인 내가 생각해봐도 그 연유를 자세히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네. 막상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몸은 상당기간 타향살이 신세를 면할 길이 없게 됐는가 싶네. 그러나 마음은 비둘기 마음일 걸세. 비둘기가 나무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늘 콩밭에 가 있다니 말일세. 내 마음이 어떻게 잠신들 대구를 떠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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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구를 나서면 바로 나지막한 飛鳳山, 200m 나 채 되려나 ,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어림짐작일뿐 어디에도 이 산의 고도 표시가 된 데가 없다. 웅장한 관악산의 여러 갈래 중 한 끝자락이다보니 그럴만도 할 것 같다. 비봉산을 넘으면 안양유원지 계곡인데 거기서부터는 바로 삼성산이고, 그 산을 지나면 무너미 골짜기를 건너자 바로 관악산 최고봉 연주대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이어진다.

綠陰芳草 우거진 林谷 온 골짜기가 오늘은 절정을 이룬 아키시아 꽃 향기로 진동을 한다. 점심을 먹은 뒤 서둘러 나선 시간이 정각 2시다. 먼 데라면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데, 왕복 너댓 시간 거리의 산행을 작정한터라 집사람과 오랜만에 동행을 했다. 오늘 새벽 가랑비까지 너더댓새 동안이나 비가 내린 다음이라 날씨가 오늘은 너무 청명하다.

비봉산을 단숨에 넘고 안양유원지를 지나 서울대학교 수목원을 우측으로 끼고 삼성산 동쪽 자락을 올랐다. 그 길로는 초행이라 도중에 몇 번을 마주치는 등산객들에게 물어물어가면서 쉬엄쉬엄 올라갔다. 햇볕은 쨍쨍이나 숲속 길이라 한결 숨쉬기가 좋았다.

관악산이 원래 암산이라 그런지 줄기인 삼상산도 암산이다. 바윗길을 오르는 재미도 솔솔하다. 안양 三聖山(481m)은 관악산과 계곡을 형성하며 맞붙어 있는 수도권의 명산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계곡이 있어 여름산행에 좋은데 수목원도 있어 금상첨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오늘은 하늘이 너무도 맑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수도권 일원의 산들을 부지런히 올라보는 중이지만 오늘 만큼  하늘이 맑고 시야가 탁 트인 날을 본적이 없었다. 등산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정상에 올랐을 때 탁 트인 사방팔방 경치를 내려다 보는 것이다. 그랬을 때는 쌓인 온갖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행을 하는 것이다.

산 능선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더 없이 마음이 상쾌하다. 하늘에는 미세먼지 마저도 전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저녁 뉴스를 들어 본 바로도 13 년만의 쾌청한 날씨였단다. 가시거리가 35km라나. 나의 눈으로 확인한 바로는 이보단 훨씬 더 멀리까지 볼 수가 있었다. 미세 먼지 수치가 제로(zero)였다니 서울에도 아니 우리 나라에도 이런 날이 과연 있는가 싶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아침 식전 혼자 비봉산을 올랐을 때 오랜만에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가 있었다. 정상에 올라서자 가랑비가 약간 뿌리는 듯 하더니 한 5분 가량 선명하게 서울 상공에 무지개가 떴다. 믿기지 않을 일이었다.

작은 아이가 사는 인천송도 국제신도시의 초고층 빌딩들과 인천대교의 높은 두 개의 타워를 비롯해서 그 큰 다리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멀리 서해 바다까지도 그렇다. 남산과 타워, 북한산(삼각산), 도봉산, 수락산이 선명하고 청계산, 수리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감탄사를 몇번이고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날만 계속된다면 매일이라도 높은 산을 오르리라.

날씨가 우리 인간의 삶에 주는 영향력은 여러 면에서 지대하다. 아마 오늘 만큼은 야외 나들이를 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도 상쾌했을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좋을 날씨가 될 듯하다는 기상정보다. 아직은 늦은 봄이다.  봄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2010. 5. 26.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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