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생님,

독후감 참으로 좋았습니다. 이 글을 읽어 보는 사람이라면 아마 누구라도 이 책이 과연 어떤 내용의 책인가 한 번쯤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말입니다. 실재 책의 내용보다 윤선생님의 서평이 돋보입니다.

“죽음의 의식 없이는 생명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조건”인가 봅니다. 필자는 “죽음은 삶의 극한 언어”라고 했더군요. “어렸을 때 높은 마루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서 키가 컷듯이 영성의 키는 죽음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악몽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가 봅니다.”

“절망의 언어가 적자라면 희망의 언어는 흑자다.”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숲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목수가 아니라는 것을 신에게 감사합니다. 목수들은 숲을 보지 못합니다. 나무에서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책상이나 의자를 봅니다. 인간이 자연물을 무엇을 위한 수단이요 도구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개 목걸이의 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도구가 아닌 존재의 나무로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하나하나의 이파리에 묻어나는 여름과 그리고 조금씩 물들어가는 겨울의 죽음들이 보입니다.”

“바람이 불면 미친 듯이 나무들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나무 이파리 하나하나가 말갈퀴처럼 흔들릴 때 비로소 나는 무엇으로도 풀이할 수 없는 나무 자신의 생명력을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병을 앓게 되면 자신이 혼자인가 아니면 남과 함께 살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호사다마가 아니라 다마호사도 있는가 봅니다.”

“연화대에 가부좌를 한 마른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부처님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고뇌와 해탈 – 나는 아직 고뇌의 편인데도 살이 많이 쪘으니 예수님 보기가 민망합니다.”

“성경은 세계의 모든 말로 번역된 유일한 책이다.
“<感動>을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도 동물도 느껴야 움직입니다.”

“문명은 같은데 문화가 다르다.”

“이슬람에서는 마호메트가 도망 다닐 때 개가 짖어서 붙잡혔다고 해서 개를 악마로 본다.”

“세상에는 반反기독교인이 있고, 비非기독교인이 있고, 친親기독교인이 있는데 나는 미未기독교인이다.”

“노아의 홍수를 보세요. 바다 고기들은 노아의 방주가 필요없습니다. ”
“암에 걸렸던  너의 아픔으로, 시력을 잃어가던 너의 어둠으로 나를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잿불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윤선생님이 이마 다 잘 지적을 하셨습니다만, 그밖의  몇 가지 인상적인 말들을 모아본 것입니다. 이어령씨는 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문학적인 표현에는 과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왕양(汪洋)”한 바다라는 데서 <왕양>이란 말을 처음 보았고, “무심코”가 아니고
<무심껏>이란 말도 그러했습니다.

일류져니스트(illusionist), 컨실리언스, 토포필리아 등은 우리말로 표기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습니다. 그대로는 다소 말이 현학적으로 들렸습니다.

하와이 비스카스는 알로와 샤쯔처럼 그렇게도 다양한 색깔로 피나요?
부겐빌레아가 피어있는 담쟁이
춤 추는 캐스터네츠의 울림처럼 등은 식물학자(botanist)가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름들이 아닐런지요. 본인이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p. 172 하단— 암몬 자손을 치게 하달라고 서원을 합니다.
p. 177 중간— 도와주면 단신을 믿겠노라고
같은 곳— 예수님들도 말씀하셨지만
p. 244 및 또 다른 데서도 하느님 으로 표기가 되고 있음

전반적으로 보아 참으로 감동적인 좋은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기대가 컷던 탓이었던지 기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 감이 있었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인 지인들에게 선뜻 추천하기가 망서려집니다.

May  1.  2010.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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