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나에겐 한 가지 얄궂은 취미 같은 게 붙었나 보다. 비좁은 아파트 공간에다 이따금씩 번갈아 가면서 노상 한두 가지 농작믈을 억지로 가꾸어 보고 있으니 말이다. 거실이나 작은 방, 부엌에다 감자, 고구마, 콩, 미나리, 무, 배추, 심지어 토란까지 키워보기도 한다.

논밭의 흙에서 자라는 작물들이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할 리가 없다. 당연히 만족스럽게 자라는 경우보다는 제대로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괜찮은 듯 하다가  점차 제 색깔을 잃기 시작하더니 배배 꼬이면서 흉한 모습으로 겨우 연명하다가 안타깝게도 끝나버리는 때가 더 많다.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봐야 부질없는 짓이고 결과는 매 한가지다. 흙속으로 충분히 뿌리를 뻗지 못하고 흙내음을 맡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빈터가 있는 마당을 가진 집에서 살 수 있는 형편이 못되는 도회의 소시민으로서는 넓은 정원이 있는 집들을 볼 때면 가끔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그런 저택은 아직 내겐 그림의 떡이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에게 편리하고 손쉬운 것이 요즘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는 아파트다.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형편이 괜찮은 줄 아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나 그건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아파트도 아파트 나름이다. 하기야 50, 60  평이 넘고 프리미엄(premium) 마저도 단위가 어머어마해서 복마님들이 눈독을 들이는 호화판 고급 맨션도 있긴 하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아파트 바람 덕택으로 나도 원래 계획보다는 쉽게 비교적 일찍 셋방살이 신세를 면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기는 하나 항상 마음 속엔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아파트 생활의 실상이다. 아파트는 나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들의 집도 더구나 아니다. 그건 벌집이요 제비집이다. 내 마음의 안식처는 아니라는 의미다. 아침 출근 길에 집을 나설 때도 일단 아래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을 때라야 비로소 내가 서 있다라는 사실을 실감케 된다. 흙과 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위스 태생의 불란서 사상가요 철햑자인 룻소(Rousseau)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란 책에서 소유권제도와 사회조직의 발전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비참을 한탄하면서 자연 상태의 인간의 행복과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는 그의 외침은 인간이 흙과 가까이 하라는 주문도 들어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왜 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많을까. 그야 자동차라는 편리한 괴물이 등장하면서 세상을 온통 먼지 투성이로 만들어 못살게도 구니까 그렇게도 된 건가. 시골, 도회 할 것 없이 도로 가까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흙이요, 흙은 곧 자연이다. 흙은 생명의 원천이요 만물의 보금자리다. 흙에서 온갖 풀들과 나무가 자라고 벌레, 새,  짐승들이 서식한다. 흙 속에 물이 있고 흙 위에 물이 고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지루하고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화창한 봄이 어느새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주말이라도 되면 잠시나마 도회의 시멘트와 소음을 멀리하고 시골에라도 가보고 싶어진다. 부드러운 흙을 밟아보고 구수한  그 내음이 맡고 싶어서이다. 흙에서 딩둘며 흙을 밟고 자란터라 그 때는 그 흙이 지긋지긋도 하였건만 다시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되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는가.

이른 봄 찬바람 몰아치는 시냇가를 추위에 벌벌 떨며 이제 막 움을 내밀기 시작하는 푸성귀 찾아 꼴망태 매고 모래밭을 헤매던 어린 시절의 쓰라린 그 기억은 영영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으려나. 봄이 오면 해마다 가난이  몰고 왔던 그 아픈 기억이 묵은 상처마냥 기어이 되살아 나곤 한다. 그러나 그 흙이 다시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변고인고.

학생들과의 대화 중에 나는 흔히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시골 어디 출신이라고 할 때면 왠지 귀가 번쩍 뜷리고 호감이 가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진다. 순박한 시골 인심이 아쉽고 구수한 흙내음이 그리워 그들을 통해 간접으로나마 그걸 체험하고 싶어서 일 게다.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에서 자란 도회 아이들과는 대화가 잘 되지 않을 건만 같은 느낌이 든다.

학교교육을 통해서라도 재학중에 우리 학생 모두로 하여금 한번쯤 시골에 가서 흙과 가까이 하면서 거기서 땀 흘리고 일을 해보는 체험의 기회가 주어지게 하면 어떨까 가끔 생각을 해본다. 인성함양에 참으로 유익한 기회가 될 것 같다. 순박한 흙내음이 조금이라도 그들 몸에 밴다면 마음 밭을 갈기가 한결  수월해지지 않을까.

 (1984.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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