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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지역 용인 수지, 수원 광교, 성남 분당 일대에 금년 겨울 들어 처음으로 서설이 내렸다. 아침 등산 길에 눈을 밟았다. 6시 25 분경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 수지성당 앞 큰 도로를 건너기까지는 눈이 왔는지도 몰랐다.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 눈이 왔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어린 아이마냥 입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유감스럽게도 적은 양이다. 그러나 산을 오를수록 더 넓은 은빛 세계가 시야에 들어온다. 청천 김진섭의 그 유명한 “白雪賦”가 생각났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고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평소보다 운동 나온 사람들의 수가 현저히 적다. 나도 오늘은 가까운 거리까지만 갔다 오겠다고 마음 먹고 걸었다. 그러나 가다 보니 자꾸 욕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기를 반복하다 결국은 편도 2 시간이상 되는 거리인 광교산 정상, 시루봉(582m)까지 가게 되었다. 눈길이 꽤 미끄러웠다. 가파른 언덕길에는 거북이 걸음이다.

벌써 나보다 앞서 간 두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물론 가는 길에 하산하는 그 두 사람과 마주쳤다. 장년의 남자 한 사람과 아가씨같아 보이는 젊은 여자 한 사람이었다.

오늘 새벽 첫눈 쌓인 광교산 정상을 오른 사람으로는 내가 세 번째 사람이다. 세번째라니, 아쉬움이 왜 없으랴. 일 등을 했어야지. 그것이 지난 날 나의 장기요 전공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더구나 만용은 금물이다. 난 지금 10년 전의 내가 아니다. 나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난 노인이다. 남들이 나를 젊은이로는 더 이상 보아주지를 않는다.

하기야 남들이 보아주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줄 아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마음 가짐과 눈이 중요하다. 조심해야 할 나이다. 마음이야 아직도 이팔청춘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기에도 그렇지가 않은가보다. 산행 때면 늘 ‘아버지 조심하세요’ 라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그들에게는 물 가에 앉아 있는 어린이마냥 내가 먼길이라도 나설량이면 마음이 놓이질 않는가 보다.

정상에서는 수원쪽에서 올랐다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눈을 뭉쳐 조그마한 눈사람을 몇 개 예쁘게 만들어 광교산 표석 큰 바위 위에 올려놓는다. 정서가 풍부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인가보다.

산행에서는 항상 내려갈 때가 더 어렵다. 그건 상식이다. 그런데 지나친 자신감도 문제다. 익숙한 길이라 이쪽으로 가도 되려니 하고 발자국이 없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갈수록 태산이다. 결국은 길이 없어지고 만다. 10여분 동안을 애써 내려 갔는데 은근히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식전이라 허기가 들까봐 걱정이다. 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에서 포기하기를 잘했다 싶었다. 다시 올라와서 보니 계속 그대로 길 아닌 길을 고집했더라면 고생깨나 할 번 했다. 말 없는 산이 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10시경 집에 도착했다. 매우 시장하다. 식전 4 시간 가까운 운동량은 내게는 무리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의 교훈을 늘 명심은 하는데도 때로는 지나치기도 하니………. 어쨌든 오늘 하루는 성공적인 날이 될 조짐이다. 내 스스로가 그렇게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 운명,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남이 자기 길을 만들어 주는 법은 없다. 매사 모두가 내탓이요 네덕이다. 그러니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남이 없는 나의 행복이 있을 수 있는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의 은인이요 고마운 존재들이다. 모두가 다 죽도록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뿐이다. 그런 누구를 원망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이요 아름다운 세상이다.

김영대

 

November 21. 2009
용인 수지 / 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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