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는 사데에서 동남쪽으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차로 한 시간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그 당시에는 노새나 나귀를 타고 이틀쯤 걸리는 거리였다고 한다. 현재에는 붉은 도시라는 의미를 지닌 알라쉐히르라고 부른다. 사데처럼 트몰루스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기원전 1 세기경에 프리지아(Phrygia)로 부터 버가모(Pergamum)왕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아탈루스 2세(King Attalus II)가 찿아낸 곳이다.
빌라델비아는 그리스어로 형제의 사랑(brotherly love)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직전 왕이었던 형 유메네스(Eumenes)를 향한 동생 아탈루스가 보낸 사랑과 충성때문이었다. 그 당시 통용되던 동전 양면엔 형과 자신의 모습을 새기게 하였다. 그리하여 버가모의 변방 주둔지인 이 새로운 도시를 형제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빌라델비아로 이름하였다.
로마 왕인 티베리우스(Tiberius, AD 14-37)가 통치할 때에 두번(17, 23 AD)이나 발생했던 지진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그에 의해 재건되었다. 빌라델비아에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는 올림푸스의 신들과 지방 신들을 섬기다 주요 포도 생산지가 된 후에는 술의 신인 디오니수스를 섬겼다. 때문에 술취함이 중대한 문제가 되는 곳이었다. 빌라델비아에 들어가는 입구 근처 분수대에는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커다랗게 만들어져서 도시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포도뿐 만 아니라 감초와 목화생산지로도 유명하다.
빌라델비아에 남아있는 크리스챤 유적으로는 베스 에이륄 지역에 있는 11 세기에 벽돌로 지어진 교회인데 비쟌틴 건물로 높은 아치형의 건물 일부분과 잘 알아볼 수 없는 프레스코 벽화가 있었다. 바닥에는 여러가지 대리석 조각들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그리스어로 씌어진 크리스챤 비문들이 눈에 띄었고 그 외엔 별로 기억될 것이 없다.
빌라델비아 교회 기간은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중엽까지로 세계를 향하여 나아간 선교의 시대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빌라델비아를 향해 “네가 힘은 적으나,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인내하라는 내 말을 네가 지켰으니, 온 세상에 닥쳐올 시험을 받을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라고 씌여있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들 중 빌라델비아는 서머나와 함께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다. 적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증거로 선교하는 교회 역활감당으로 세계적으로 복음이 전파되면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시기였던 것 같다.
빌라델비아 교회. 맑은 아침이라 사진 찍기에 적합했다.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기독교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 조각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빌라델비아 교회. 입구에 성 요한 교회라고 씌어 있었다. 문 앞에 친구 마고와 그녀의 어머니가 보인다.
동네 아이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아침부터 졸라댔다. 마고 어머니와 함께 찍었다.
장난스런 동네 아이들.
빌라델비아는 포도 산지로 유명하다.
빌라델비아 시가지
어디를 가나 마부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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