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감향기 풍겨오는 가고 싶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동백꽃 송이처럼 어여쁜 비바리들
콧노래도 흥겨웁게 미역 따고 밀감을 따는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수평선에 돛단배가 그림 같은 내 고향
칠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히 풀을 뜯고
줄기줄기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내 지금껏 내 글에서 어느 대중가요 가사를 다 소개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노래는 불세출의 가수 조미미가 불러 힛트한 노래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무척이
좋아한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너무도 일찍은 나이로 지난 해 9월 우리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다.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랴만 아직은 마땅히
살아 있어야 할 사람이 벌써 고인 되고 말았다니! 한 가수의 죽음이 너무도 슬다.
미인박명이더니 그녀의 이름에는 ‘미(美)’ 자가 두 개나 들어 있어 더 일찍 가시고 말았는가.

명시(名詩)가 따로 있는 게 아다. 위 노 가사가  바로 시라면 명시요 글이라면 명문이겠다.
대중가요 노랫말이라고 명시가 되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는가.
가곡은 대개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과만 연상이 될 뿐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나 곡을 붙인 사람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 노래는 정
  태권이 작사하고 유성민이 작곡을 했다. 명시에다 아름다운 선률마저 가미가 되었
  으니 어찌 이보다 더 훌륭한 ‘서귀포 찬가’가 또 있을소냐. 한 곡의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위해서는 이처럼 삼자가 맞고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는가 보다. 

  나는 지금 바다 건너 제주 귀포에 있다. 이곳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제일의
  최남단 휴양지다. 어제도 오늘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서귀포 앞바다 레길 7, 8코스를
  신나게 걷고 왔다. 고개돌리면 하얗게 눈 덮인 한라산 정상이 지척인양 손에 잡힐듯
  가깝고 선명하다. 지나는 길옆 장마다에는 가지가 찢어질 듯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감
  귤수확의 손길을 다리고 다. 우리 국민 오천 만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양이
  될 터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은 국민이 아닌가. 오는 복을 제발로 걷어
  차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되리라. 12월의 서귀포는 그야말로 온통 밀감 천지다.

    그제도 집에서 가까운 서귀포 제주 월드컵경기장 앞바다 범섬이 보이는 데서 시작하여
강정(江汀)마을 앞바다를 지나는 올레길을 걸었다. 노랫말 그대로 밀감 향기 짙게 풍겨오고
저 멀리 쪽빛 바다 수평선엔 돛단배가 그림같다. 지나는 길이 그토록 말썽 많은 해군기지
  건설 사가 한창인 구역이다. 그런데 공사장 울타리 뒤편에서는 아직도 꼴사나운 전문
  데모꾼들의 장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듯 그들을 지보는 피로에
  젖어 무표정한 전경들무리가 여기저기 보인다. 정작 마을의 평화를 깨트리고 지나는
  이들의 눈살을 찌프리게 하는 건 데모꾼들이 설치한 어지러운 무당 굿판이요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그들의 확성기 리였다.

  세상 천지 어디에 우리나라 말고 이런 오도된 민주주의가 판을 치는 라가 또 있다더냐.
 내 상식으론 들어본 바조차 없다. 근처 올레길 어느 휴게소 주인의 말이다. 데모에 나가면
  일당이 팔만 원이란다. 건달 일당 치고는 괜찮은 액수다. 이 자금의 출처가 어딘지 궁금
  하다. 나라 망치는 일을 하는 자들에게도 돈을 주다니! 이건 무법천지요 무정부 바로
  그것이다. 이래도 대한민국을 과연 법치국가라 할 수 있을까. 공권력이 무너진 나는 국
  안보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하지 못한다.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나라다.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시급한 최우선 과제가 추상같은 공권력을 확립하는 길이리라. 
  어제 오늘 밟은 코스는 제주올레 스물한 개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들 한다.
  나로서는 아직 올레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지나는 곳마다 모두가 새롭고 특이하고
  경이롭다. 나는 평소에도 제주도가 태평양의 지상낙원이라는 하와이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번 올레 여정을 통해 그 사실을 몸소 확인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 제주도가 있다는 것은 자연이 내린 축복이다. 우리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
  되어 있고 제주도가 없다면 얼마나 허전하고 서운할까. 특별자치도가 된 이유를 알 만 도 하다.

  백문불여일견이라는데 백견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내가 걸어
 요 며칠 동안은 올레길이 매우 한산하다. 한참을 걸어도 앞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길이 우리 내외 늙은이 두 사람전용 산책로가 되다
  시피 호젓하기만 하다. 늘 낙천주의자로 자처하며 살고 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행운
  아요 까지껏 복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 제주 여행만 해도 그렇다. 그래서 같이
  여행을 때면 우스갯소리지만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곧잘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나와 함께 하면 그날은 반드시 뜻밖의 무슨 좋은 일이 생긴다’고. 

  육지에서는 지금 겨울이 한창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주올레 탐방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지금 여기 남쪽나라 서귀포 해안은 온갖 꽃들로
  봄이 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할 정도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약빠른 고양이 밤눈이 어둡다 했던가. 내가 산 증인이다. 사실은
  지금 겨울철이 올레길 탐방에는 최적의 철인 줄도 모른 채. 이마에 송송 맺히땀방울을
  훔치는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는 추위를 잊은행복한 시간이 되고 있다. 

  역시 사람은 건강하다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오늘은 어떤 날인가. 어제 눈감은 이들이
  그렇게도 살기를 염원했던 그런 소중한 날이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을 살고 있는 나는
  이날을 잠시도 허송할 수는 없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라. 감사할 줄 모르
  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 값을 하며 사람답게 살아야겠다.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 자연에, 굳건한 삶의 터전을 이처럼 살기 좋게 닦고 가꾸어 놓은 선인들의 노고에,
  그리고 나를 이토록 편안하게 지켜주는 나의 조국에 감사 또 감사하며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발길’을 서귀포 동백꽃 숲길을 따라 김삿갓이 되어 옮기고 또 옮긴다.  

   2013-12-09
  제주 서귀포에서/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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