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11월 ‘낙엽’

[중앙일보]  입력 2013-10-31  12:01

남이섬

11월은 괜히 허전합니다. 문득문득 뒷덜미가 궁금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괜스레 마음만 바빠집니다. 11월이면 찾아오는 계절병입니다.

누가 마당을 쓸고 있다
낙엽 흩날리고 날은 벌써 저무는데
바람 속에서 누가 자꾸 마당을 쓸고 있다
-이시영, ‘십일월’
이시영 선생의 ‘십일월’이라는 시를 읽다 보면 이 원인 모를 계절병의 정체를 얼추 짐작하게 됩니다. 어느새 달력이 너무 얇아진 겁니다. 올해도 딱히 이뤄놓은 건 없는데, 마무리를 해야 할 시점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겁니다. 날은 벌써 저물었고 마당에 쌓인 낙엽도 얼마 안 남은 겁니다. 자꾸 마음만 급해질 밖에요.
11월에는 남이섬에 가야 합니다. 그것도 진즉에 부지런을 떨어 섬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남이섬에 들어오는 첫 배가 가평나루를 출발하는 시간이 오전 7시30분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7시에는 은행나무 길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길에는 밤새 떨어진 노란 잎이 수북해야 하고, 아무도 그 길을 밟기 전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안개가 거치지 않아 사위는 아직 희붐해야 합니다. 이 조건이 완전히 갖춰졌을 때 남이섬은 평생 잊기 힘든 장면을 연출합니다. 노란 은행나무잎과 붉은 단풍나무잎이 자욱한 물안개 안에서 수묵화처럼 번지는 장면 앞에 섰을 때, 아니 그 그림 같은 장면 안에 당신이 들어가 있을 때 가을 풍경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10월이 단풍의 계절이면, 11월은 낙엽의 계절입니다. 잎사귀가 한 해를 다 살고서 땅에 내려앉는 계절입니다. 그 낙엽마저 계절은 이내 거둬내겠지요. 겨우내 낙엽을 치우지 않으면 이듬해 봄 새싹이 움트지 못한다지요. 이제 정말 올해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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