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9271

그렇지 않아도 엄마에게 맛난 것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날씨도 더우니 냉면 생각이 나신다고 해서 모든 것 제쳐놓고 아는 식당으로 모셨다. 얼마나 맛나게 드시며 행복해 하시는지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부쩍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는데 테이블 위의 냉면은 다 드시고 갈비도 꽤 드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리고 냉면 속 배
한 조각이 왜 이리 맛있냐고 하시길래 내 그릇에 있던 것도 얼른 옮겨 담았더니 말로는 괜찮다고 너나 먹으라면서도 얼른 입에 넣으시는 모습에 흐믓하기만 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먹는 배는 이렇게 맛있는 것 같지 않았는데 이건 왜 이렇게 맛있느냐며 웃으셨다.

엄마는 항상 건강하시고 강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젠 걷는 모습도 힘 없어 곧 쓰러지실 것만 같아 몇 발자국 못가서 그만 풀썩 주저앉으실 것만 같아 보인다.  젊으실 땐 흙이 잔뜩 달린 커다란 나무도 번쩍 들어 옮기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셨고 잠시도 쉬지 못하는 부지런한 성격이시라 밭에 채소도 가꾸시고 온갖 집안 일을 다 하시면서 손주 셋을 다 키우다시피 하셨는데, 그 때는 아무리 힘들고 피곤하셔도 자고나면 몸이 거뜬하다고 하셨는데 이젠 까마득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 하시고 가만가만 발을 옮기신다.  동네에서 운동삼아 하시던 산책도 힘들다며 못걸으시고 차에 올라타실 때에도 한참 시간이 걸린다.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생에 대해 더 생각을 하게 된다.

맛있게 냉면을 드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가 걱정이 된다고 하신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이런 표현은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연이어 엄만 생전 겨울내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웬지 무사히 지낼 수 있을런지 걱정스럽다고 하셨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들 말한다.  자식들을 다 키워주신 엄마는 항상 건강하시려니 걱정도 안하고 그저 자식들이나 챙겼던 내가 불현듯 엄마가 걱정스럽다.  요즘 들어 부쩍 몸이 아프다고 하실 때면 차라리 내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수고로 살아온 내가 엄마가 다 늙어 힘이 없어져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게 이제야 내가 철이 좀 드는가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건 왠일일까.

좀 더 잘해드려야 할텐데.  좀 더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할텐데.  올 겨울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내셔야 할텐데.  고요한 밤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처럼 내 마음도 분초를 다투며 째깍거린다.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라도 더 잘해드려야겠다.

윤명희
2013-10-07

723 total views, 1 view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