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목사를 처음 만난 것은 25년 전. 온누리교회가 지금의 자리에 양철 콘센트 가건물을 지어놓았을 때였다. 결혼 후부터 아내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는데 말단기자 시절이어서 그랬는지 예배시간 내내 잠만 잤다. ‘잠들지 않는 예배’를 찾아 여러 교회를 전전하다가 그곳에도 가게 됐고, 아내의 말에 따르면 1년 만에 비로소 졸지 않게 됐다. 함께 있고 싶고 얘기가 듣고 싶어 가까이 갔더니 그가 하용조 목사였다. 전날의 술이 덜 깬 상태로 아내에게 붙들려 나가면 “정 기자, 술 마셨다고 안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고 싶어 또 나갔다.
하 목사는 나에게 ‘과외선생님’을 붙여 주었다. 스스로 돌아온 탕자라고 불렀던 선생님이었는데 역시 ‘곁에 있고 함께 지내고 싶은 박승철 형님’이었다. 그는 해외선교를 자임해 중국에서 주로 탈북자들의 심신을 보듬는 일을 했다. 2000년 1월 한 탈북자에게 도움을 주러 폭우 속에서 압록강 근처까지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신도들 간에 서로 닮아가자는 의미의 ‘과외제도’는 현재 거의 모든 교회에서 ‘일대일 양육’이라는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온 누리에 사랑을 실천하는 해외선교사는 하 목사가 소천하기 전까지 1,220명에 이르렀다.
하 목사가 한국 교회의 대표적 복음주의 지도자였으며 문화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됐다. 건성건성 주일을 찾은 탓이겠지만 교회보다 그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리라. 지난 주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그림 <돌아온 탕자>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아들을 끌어안고 있는 아버지의 두 손이 완전히 다른 모습인데 오른손은 어머니의 손, 왼손은 아버지의 손이라고 했다. 한 톨의 사랑도 빠뜨리지 않고 실천하는 부모의 마음이 예수의 사랑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이 있었다. 하 목사의 소천 소식을 듣고 문득 그 그림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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