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들이 바글바글하다. 어항에 물고기 밥을 넣어주다가 오랜만에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섯 달 전과 비교하면 새끼들이 열 배는 넘는 것 같다. 올 이른 봄부터 주말마다 지방에 내려가느라고 눈길도 안 주고 밥도 주말에는 건너뛰고 했건만, 어인 일인지 오히려 물고기들은 죽어나가는 물고기 하나 없이 왕창 번식 중이다.
어항을 샀던 5년 전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꼬박꼬박 정성껏 밥을 주고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졌었다. 그때는 내가 밥을 주려고 뚜껑을 열어도 시큰둥해 하고, 수족관 유리에 코를 쳐 박고 들여다봐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던 이것들이 요즘은 그 옆만 지나가도 내 움직이는 방향대로 우르르 몰려다닌다. 옆에 있을 때 어떻게든 관심을 끌어서 밥을 얻어먹으려는 심산인 것 같다.
이제야 내 고마움을 아나 보다. 그 마음 나도 잘 안다. 요구하지 않아도 삼시 세 때 꼬박꼬박 정성껏 차려 나오는 밥상의 고마움. 기진맥진되도록 굶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알겠으며, 잠을 쪼개 가며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매달 꼬박꼬박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의 고마움을 알 턱이 있겠는가. 물고기이건 자식이건 키우는 데 사랑만이 다는 아닌가 보다. 배고픔과 외로움과 모자람의 경험도 보태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하철 막말 사건. 자기 아이를 만졌다고 할머니 나이의 어른에게 생수통으로 때리는 시늉까지 해가며 호통을 쳤던 젊은 엄마. 발을 꼬고 앉았다고 다리를 치며 발을 내려놓으라고 했던 어떤 할아버지에게 삿대질까지 하며 온갖 욕을 해대던 젊은 남자. 굳이 이해를 하려 한다면야 젊은 그들의 마음도 짐작은 간다.
다리를 툭툭 치면서 내려놓으라고 한 할아버지가, 애지중지 자기 딸을 만지는 낯선 할머니가 불쾌할 수 있다. 어쩌면 싫거나 불쾌한 경우를 당했을 때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 불쾌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해 왔던, 집에서 자기 부모에게 했던 그 방식 그대로 똑같이 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보기도 듣기도 민망했던 이 사건. 어쩔거나. ‘우리 아이는 나같이 살지 않게 하겠다’는 우리 기성세대들의 삐뚤어진 교육의 결과물인 것을. 배를 곯아본 부모는 자식을 비만아로 만들고, 배움의 기회에 목말라 했던 부모는 사람 됨됨이에는 관심 없이 오로지 공부만을 외쳐대며 가슴은 없고 머리만 있는 삐뚤어진 ‘똑똑이’를 낳고, 하고픈 말 못하고 층층시야 어른들에게 치여 살았던 부모들은 버릇없는 자녀들을 만들기 십상이다.
사실 무조건 이 ‘막말녀와 막말남’만을 나무랄 수도 없다.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내 손자 손녀 같다 하더라도 함부로 다리를 툭툭 치거나 만지는 일은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시장에서, 하물며 방송에서조차 모든 국민이 다 언니 오빠 이모 삼촌 친척인 우리나라. 그 할아버지나 그 할머니는 자기 손녀나 손자 같아서 그렇게 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랑 상관없이 그런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좌판을 두드리는 내 어깨너머로 모니터를 훔쳐보던 남편이 내 얼굴을 보며 한마디 한다.
‘너나 잘하세요.’
2011. 07. 07.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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