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溪!

 

내외분 다 잘 계시다니 다행일세.
염려덕분에 우리 내외도 여전하네.
요즘 같은 엄동설한에는 뭐니뭐니 해도 건강관리가 최우선 과제일세.

주변에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같이 누가 어떻게 아프다 그래서 입원했다
등의 한심한 소식뿐이니 이런 게 어디 남의 일로마 치부하고 말일인가.
개 눈에는 뭐밖에 안 들린다더니 요즘의 우리 귀에는 그런 소리만 들리는 겐가.

오늘은 금년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다운 눈, 瑞雪이 대지를 포근히 덮었네.
거기 우리 고장 팔공산에도 눈이 내렸구나. 아마 거의 전국적으로 동시에
서설이 내렸는가 보세. 여기도 제법 많이 내렸네. 안델센의 동화에 나오는 雪國,
눈나라를 방불케 하기에 충분했다할까. 아마 4~5cm는 족히 될 것도 같았네.

이런 날 아침엔 가만 있지 못하는 짓궂은 심사가 어김없이 또 발동을 했지뭔가.
느지막하게 8시경 집을 나서 두어 시간 이상을 조심조심 산 속 눈길을 혼자 헤매다
돌아왔네.  러셀도 물론 했지. 아무도 가지 않은 눈길을 내 발자국만 남겼으니.

몇 사람이 지나간 발자국은 보이는 데도 두 시간 이상 동안 겨우 서너 사람밖에
만나진 못했네. 아이젠을 착용할 정도까지는 아니라 그냥 나섰지. 평소보다는 시간이야
물론 더 걸렸네만 비봉산 꼭대기에 올라서 둘러본 사방은 그야말로 別有天地였었네.

“白雪賦”라도 한 편 쓰고도 싶었다만 속알이만 하다 그냥 있네.
童話의 나라를 헤매고 와서도 그 감회를 나타내기가 쉽지가 않으니……
나의 이 무딘 필력을 어디에다 하소연하면 될까.

“두더지의 주례사” 잘 읽었네. 그야말로 아주 색다른 신선한 글이었네.
“土鼠金虎”라는 말은 어디 있더라만 인간사를 두더지(토서)에 빗댄 훌륭한
동화라하면 더 좋을 듯도 싶네. 이런 글을 이름하여 “수설(隨說)”이라 한다
했던가. 글쎄, 금시초문이다만 참 재미 있는 한 장르가 될 것도 같네.

일취월장하는 武溪 자네의 글 솜씨를 지켜 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커져가는
느낌일세. 시작이 반이랬으니 이제 시작을 너머 완전 발동이 걸렸네.
내친 김에 질주를 하시게. 눈과 손이 더 둔해지기 전에.

모윤숙은 ‘고지가 저긴데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했던가. 우리도 쉼없이 고지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야 하네.
그 고지를 넘는 날엔 물론 영원한 하늘 나라가 준비되어 있지 않겠나.

저무는 庚寅년 연말연시, 좋은 일만 늘 함께 하길 기원하네.

餘는 不備禮하네.

2010. 12. 09.

안양 비산동 林谷에서 / 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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