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금년 가을 들어 기온이 가장 많이 내려간 날이란다. 서울 지역이 영하 3도라나. 첫 추위라 그렇지 하기야 영하 3도쯤은 추위도 아니다. 요즘이야 옷이며 장비가 좀 좋은가. 어제 아침에는 오랜만에 좀 멀리 삼성산으로 식전 산행을 갔다.
7시경 집을 나섰으니 그다지 이른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많던 아침산꾼들이 다 어디를 갔는지 도무지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그렇다. 그 시각 정상에 나 혼자 설 수가 있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했겠는가. 개선장군이 된 듯했다.
기온이 오늘 아침만큼 내려간 것도 아닌데 추울까 염려가 되어 두꺼운 등산복으로 무장을 하고 나섰더니 10분도 채 못 가서 후회가 되었다. 좀 가벼운 차림으로 나설걸 하고 말이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노상 벗어 들고 다닌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가파른 산길 오르기도 힘이 드는데 무거운 웃통이 여간 거추장스럽지가 않았다.
요즘도 이른 아침 집을 나설 즈음에는 한겨울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따뜻한 실내에서 긴 시간을 보낸 다음이라 갑자기 밖으로 나오게 되다 보니 당연히 그러기 마련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 몸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니 그 잠깐 동안을 대비해서라도 자연 옷을 많이 입게 된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항상 문제가 된다. 오르막 산길을 조금만 가다 보면 이내 땀이 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턴 웃옷은 거의 벗어 들고 다녀야 한다.
“서울 갈 땐 눈썹을 빼고 가라”는 옛말이 있다. 머나먼 한양 길이 아니더라도 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첫째 몸이 가벼워야 한다. 등산을 할 적마다 느끼는 현상인데 짐이 가벼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힘에 겨운 높은 산을 오를 때는 등짐이 문제가 된다. 젊을 때는 그런 걸 별로 개의(介意)치 않았는데 나이 들고부터는 특히 그렇게 느낄 때가 잦다. 무게로 따져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배낭을 벗어젖히면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선 몸이 가벼워야 한다. 등산에는 체중조절이 중요하다. 가령 체중이 70kg 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5~10kg쯤 줄인다고 가정해보자, 얼마나 산행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되겠는가. 체중으로 관절에 무리가 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나이 들어가면서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아마 이건 거의가 과체중으로 기인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어제 아침 혼자 한 식전 산행이 하도 좋길래 오늘은 기온도 어제보다 더 내려간다는 예보도 있고 해서 또 가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이런 날 이른 시각에 산행을 할 때면 그 산은 내 전용이 된다. 일찍부터 그런 산행을 즐기는 것이 나의 특기이다. 새벽 눈이 떠지자마자 잠자리에서부터 집사람을 같이 가자고 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다. 그야말로 바위에 대침이다. 그런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했다. 춥고 시간도 이르고 등을 이유로 안 가겠다는 사람을 설득해서 마침내는 억지로 데리고 갔다. 내가 생각해봐도 나는 새벽형 인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집 사람은 나와는 다르다.
이 집으로 옮겨오고도 집사람은 아직 삼성산 정상에는 오른 적이 없다. 아파트 뒷산 비봉산에서 삼성산과 관악산을 바라보기야 자주 하면서도 말이다. 百見而不如一行이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아침 다른 길로 시도를 했다가 덥고 길도 잘 모르고 배도 고프고 해서 되돌아온 적은 한번 있다. 사실 젊지도 않은 할머니로서는 쉽지가 않음을 물론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나로서는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이다. 집사람의 건강 하나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건강으로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는가. 집사람은 금년 말이면 드디어 ‘지공파’(?)로 입적이 된다. 경로우대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477m 정상 국기봉에 오를 때까지 뒤따라 오면서 연신 불평이다. 도중에서 몇 번이나 되돌아가겠다며 떼를 쓰는 사람을 달래며 기어이 정상까지 모시고(?) 갔다. “시작이 반이다”라더니 결국은 목표를 달성했다. 정상에서 바라다 본 주변 경관은 언제 보아도 가관이다. 인천대교며 314m로 우리나라 최고층 건물인 송도신도시의 NEAT(동북아무역센터 : North East Asian Trade Center)가 멀리 보인다. 그런데도 집사람은 전망이 별로란다. 그건 억지로 따라왔다는 억울한 심정 때문인가. 여자의 심리는 참으로 이상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속으론 그렇지 않으면서도 남편인 내게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이런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런 억지라도 받아줄 수밖에 없다.
내려오면서는 기분이 서서히 풀리는 모양이다. 귀찮고 힘은 들었지만 좋은 데를 왔으니 좋을 수밖에. 오늘은 어제보다 십여 분 일찍 집을 나섰는데 산을 내려오기까지 고작 두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그것도 산을 거의 다 내려와서 말이다. 여자는 물론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집사람으로서도 어찌 성취감 같은 걸 느끼지 않을 손가. 그래서 내 스타일의 이런 특별한 아침 산행이 좋은 것이리라. 다 내려와서는 내가 집사람에게 “우리 일주일에 두 번씩은 삼성산 아침 등산을 하자”고 했더니 반대하는 눈치가 아니다. 결국은 내 작전은 성공을 거둔 셈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그런 산행이면 하루 일과가 족히 되는데 내 스타일대로 하면 하루를 완전이 버는 셈이 된다. 사람들은 나보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들 하기도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도 물론 이른 새벽에 따뜻한 잠자리를 벗어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부지런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 비슷하게 굳어버린 것 같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Habit is the second nature.) 했던가. 좋던 그렇지 않던 습관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부지런하지 않고선 건강도 지킬 수 없다. 나도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이다.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옛날 같으면 죽어도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목숨이다. 지금 내가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은 현대과학, 현대의술의 덕택이다. 겨울이 다가와도 오직 감사한 마음뿐이다.
2010. 11. 26.
林谷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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