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좀 멀리 가는 산행이라 기대가 컸다. 어제 밤엔 자정을 약간 넘긴 늦은 시각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튿날 산행에의 기대로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어디 간다 하면 설레는 마음이 앞서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시 말해 젊었을 때나 나이 든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육신은 늙어도 마음은 아이 마음이라더니 틀림이 없는 말인가 보다.
하기야 마음마저 늙는다면 나이 든 이들이 어떻게 노후를 지탱해 낼까. 어쩌다 우연히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노쇠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면 참으로 심정이 허탈하고 울적하기까지 하다. 사람은 자기가 노쇠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는 대개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 일 게다. 그런 때의 모습이 진정한 자기 모습이다. 의도적으로나 무슨 용무가 있어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될 때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럴 적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면 노년은 그로 인한 좌절과 실망으로 버텨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생의 의욕상실증이라도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평소에는 의도적으로 ‘아니다 저건 내 모습이 아니다’를 속으로 되뇌면서 잊고 살려고 애를 쓰는 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는 진실을 외면하고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건 내가 위선자로 산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지금까지는 주로 혼자 산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서울지역에 산 지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굳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까닭이다. 나는 과거 꾸준히 산을 즐겨 탔고 나름대로 기본 실력이 몸에 배어있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나는 원래 혼자 하는 산행이 좋다. 같이 하면 좋은 점이 있는 것만큼 혼자 하는 산행의 장점도 의외로 많다.
근자 우연한 기회에 산행애호가들의 모임인 좋은 산악회를 하나 알게 되었다. 그 모임에는 우리 동향인들, 특히 대구 경북 출신의 연배 학교 동창들이 몇 사람 있기도 해서 쉬 정이 갔고 푸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원하면 언제든지 끼일 수가 있어 가담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도 그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다.
행선지는 가평군 북면에 있는 연인산(1068m)이다. 우선 그 이름이 특이하다. 어째서 낭만적인 이름의 연인산(戀人山)이 되었을까.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이 산은 수도권 1일 관광권에 위치하고 매년 들꽃축제가 열리는 산으로 용추구곡 발원지의 최고봉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밖에 이 산은 지난날 길수와 소정이라는 이름의 두 청춘남녀가 애틋한 사랑을 했던 곳으로 그 아름다운 사연을 간직한 채 가시덤불로 덮여 있던 이름없는 산(無名山)이었다.
그 뒤 지난 1999년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이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옛날 이곳의 주인공이었던 선남선녀와 같이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소망을 기원하라는 의미로 ‘연인산’이라 이름을 지었다 한다. 예로부터 지역에는 잣이 많아 잣둔리라 불렀는데 다시 한자로 백둔리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도 지역 어르신들은 잣둔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광역버스로 일행과 함께는 처음인 산행이라 일찍 출발했다. 여섯 시가 채 되기도 전 집을 나섰다. 택시로 안양역까지 대략 5, 6 분 거리, 거기서 1호선을 타면 서울역, 시청, 동대문을 지나 곧장 청량리까지 직행이다. 현대코아 앞에서 집결을 해서 가평행 1330-44번 빨간색깔 광역버스로 가평 터미널까지 갔다. 거기서 좀 기다려 산행기점인 백둔리 행 초록색깔 지역버스 33번에 올랐다.
깊은 산골로 접어들자 주변의 경치가 가히 환상적이다. 오곡백과 무르익어 가는 논이며 밭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특히 사과 과수원들이 많다. 주렁주렁 빨갛게 매달린 탐스런 사과로 나무가지가 찢어질 지경이다. 비가 오고 난 뒤라 계곡은 명경같이 맑은 물로 넘쳐난다. 창밖을 내다보는 일행들은 아이들마냥 마냥 즐거워하며 연신 환성을 질러댄다.
산행 시작 시간이 11시가 막 지나고 있다. 울창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가 완전히 하늘을 가렸다. 우거진 길가 잡초들이 키보다 더 크다. 누가 보은(報恩)이라도 할 일이 있다면 이런 길에서 결초(結草)하면 되리라. 계곡물에 파이고 씻겨 내려간 길이 미끄럽고 너무 험하다. 한 발 한 발을 옮길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판이다. 잠시도 방심하거나 헛눈을 팔 수가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래도 일행은 잘도 간다. 아마추어 경지는 한참 넘어선 그야말로 산꾼들이다. 여자회원 네 사람을 포함해서 오늘 일행은 열 다섯 사람이다. 그 중에서 내가 오늘은 제일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오늘 산행은 유독 힘이 많이 든다. 왠지 아침부터 약간 컨디션이 좋지가 않다. 어제 밤 늦게 먹은 특히 매운 맛의 저녁 식사 때문인가. 나는 좀처럼 배탈이 나는 사람이 아닌데도 속이 편치가 않은 게 문제다.
능선 아재비고개에 도착한 시각이 12시가 가깝다. 여기까지 오는 데 죽을 고생을 했다. 갈 길은 먼데 이를 어찌할꼬. 이정표는 정상까지 3.3km를 가리킨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는 적어도 너댓 시간은 족히 남았단다. 이젠 능선에 올라서서부터는 따가운 햇살을 계속 받아야 하기도 한다.
병은 널리 광고를 해야 한다 했던가. 견디다 못해 드디어 사정을 호소했더니 누군가가 정로환이라는 구급약을 준다. 먹고 잠시 지나고 나니 말 그대로 속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산꾼들은 저마다 다 무슨 약이라도 한 두 가지는 비상으로 지니고 다닌단다. 평소 약에 대해 신뢰를 가진 사람이 아닌데 오늘은 다르다. 젊었을 때 말이지 나는 옛날에 이미 더 이상 청년이 아니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섰다. 두 시가 가깝다. 일망무제(一望無際)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 하늘이다. 주변에 명지산, 화악산, 응봉산, 운악산 등 1000m가 넘는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일찍이 가평군의 산군(山群)지역을 한국의 알프스니 경기의 알프스라 불렀던가. 가을의 전령 잠자리 떼가 무수히 정상을 날아다닌다. 내리쬐는 한낮의 햇살이 따갑다. 하산을 서둘렀다. 하면 상판리 쪽으로 내려가는 골짝길을 택했다.
점심 먹을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내려가는 길도 미끄러운 급경사길이다. 다급한 김에 비스듬한 하산 길 중간 그늘 진 지점에 자리를 잡았다. 시장이 반찬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 듯 가져온 음식들이 잘도 사라진다. 산행하는 이들의 음식 인심은 유별나다. 맛 좋은 과실주는 어찌 그리도 많은지. 인삼주는 기본이고 매실주, 오디술, 오미자술, 복분자, 더덕술 종류도 다양하고 맛 또한 각양각색이란다.
산행 때면 술을 산행 필수품으로 챙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술이라면 백 촌이 넘은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자리에서도 어색하다. 찬밥에 도토리 신세다. 어디 가도 꿔다 놓은 보리 자루 행세를 면할 수 없다. 그런 데도 여태껏 용케도 잘 버텨온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는데 나에게는 무슨 재주가 있어 오늘까지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존재, 하나님의 음덕이요 사랑이요 은혜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종점 상판리 도로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야 했고, 발을 적셔가며 계곡물을 건너기를 수십 차례, 아슬아슬한 위험한 고비도 몇 번이나 넘겼다. 그래도 한 사람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하산했다. 특히 여성회원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금년 여름은 1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비 온 날이 잦았던 해란다. 그래서 그런지 온 골짜기가 물 천지다. 우리 산하가 연중 이런 상태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지금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상태다. 곡식도 과일도 채소도 물보다는 햇볕이 더 필요한 때다. 오는 가을엔 따가운 햇살이 제발 그들의 알찬 결실을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다.
상판리에서 운악산 입구까지 버스로 내려왔다. 다시 현등사 주차장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거기서는 가평읍을 거쳐 청량리까지 바로 가는 직행버스가 있단다. 5시 20 경에 서울로 출발했다. 청량리까지 가지 전 일행이 함께 남양주 도농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다. 일부는 마무리 한 잔을 하기 위해 주점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각기 중앙선 전철로 갈아탔다.
나는 도농에서 이촌까지 와서 거기서 4호선으로 바꾸어 탔다. 동작, 사당, 과천 등을 경유해서 목적지 범계역에 내렸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의외로 둘째 새아기가 받는다. 어제 늦게까지 우리가 송도에서 같이 있다 왔는데 또 왔단다. 나야 손자녀석을 또 보게 돼서 왠 떡이냐 싶어지만 사실은 집사람이 팔이 아파 어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게 걱정 돼서 왔단다. 그 마음씨가 너무도 갸륵하고 기특하다. 요즘 세상에도 고부간에 이런 도타운 정이 살아 있는가.
집에 당도하니 9시가 조금 지났다. 손자녀석이 할아비를 반기며 달려와 안긴다. 시간이 늦었다. 저들 집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를 선 김에 바로 차에 태워 주고 빠이빠이를 하고 올라왔다. 뜻하지 않게 도중에 힘은 들었어도 마무리는 좋다. 참으로 보람 있는 하루요 행복한 순간이다.
컴을 열어보니 부탁의 건이 하나 와 있다. 피곤은 해도 완성해서 보내면 그쪽에서는 그만큼 더 좋아할 것이다. 내가 남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살 맛 나는 일이 어디 있을까. 완성해서 보낸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익일 새벽 1시가 지났다. 쾌면은 약속이 되어 있다. 행복의 꿈나라로…………
–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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