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길거리가 많아진 시대에서는 크리스마스도 그저 그런 년말 이벤트에 불과한 것인가보다. 명동의 밤거리에 수십만명이 모여 뿔피리를 불어대던 광란의 카니발은 이제 전설이 되었도다.
예수께서 베들레헴 여관의 구유에서 태어났을 때…들판에는 양치기 목동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예수님이 태어난 계절은 겨울이 아닐 것입니다. 이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예수님의 생일을 기념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의 생일을 알아낸 것은 의미와 관념이었습니다……”그 분은 이 세상이 가장 어두울 때 빛으로서 다가오신 것이므로 그가 오신 날은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틀림엄따…..”
어찌되었건 밤이 길고도 추운 한 해의 끝말에 축제의 날을 만들어준 사람들의 의지에는 신의 은총이 간여했을 것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바 입니다….가만있자….그렇다면 그 “겨울”의 들판에 모여있던 이 “목동” 녀석들의 입장은 어떻게 설정해야만 할까?
….그래…녀석들은 베들레헴의 악동(惡童)들이었을 것이야….악동의 시절을 살아본 나…김바사는 그걸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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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둥근 달이 휘엉청 떠오르면 우리들은 밤의 좀비가 되어 우물가옆 진갑이네 집 굴뚝아래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어린 좀비들….진갑이, 명환이, 송학이, 은식이, 토란부랄, 오줌걸레는 굴뚝옆에 볓집을 깔고앉아 굴뚝이 주는 온기에 의지하며 늑대형님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관우물 대첩>
드디어 형아들이 나타나면 우리는 그 날의 야간전투를 준비하죠…작대기와 돌멩이를 들고 아랫동네나 윗동네의 녀석들과 전투를 벌이는 것입니다…..관우물이 있는 아랫동네와 벌린 “관우물 대첩” 은 나의 역사에 길이 기억되는 전투였는데 어두운 밤, 좁은 골목에서 수십명이 얽혀싸운 이 전투에는 작대기 부딪하는 소리가 하늘에 진동하였고 돌멩이가 우박처럼 날았습니다.
아아…늑대형아들은 용감했습니다.
그 날 초등학교도 들어가지못한 어린 좀비인 나는 뒷전에서 꾸물거리다가 누군가의 발길에 맞아 개천으로 굴러떨어졌는데 전투가 끝난 후 늑대형아들은 이런 나의 부상을 전과로서 인정해주며 내 머리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진갑이네 굴뚝아래에서…>
전투가 없는 날은 이 굴뚝아래에서 형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북극을 수영쳐 건너간 안중근 열사, 배를 찔러 자신의 창자를 왜놈 면상에 집어던진 이준 열사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등에 뿔이달린 거북 잠수함을 몰고 다니신 이순신 장군, 눈깜짝하기도 전에 총을 빼는 케리 쿠퍼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이야기의 소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똥바가지 별(북두칠성)을 찾고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하여 붙어있는 우리들의 몸에서는 퀴퀴한 향취가 났는데 진갑이 녀석이 입고있는 미군 담요로 만든 옷에서는 오래된 양말냄새가 났고…은식이 녀석의 머리통에서는 기계충이 없어지라고 바른 된장냄새가 향기로웠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했는데….훗날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즐겁다…” 는 신경림의 싯귀절을 그 추억으로 인하여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하튼….모든 이야기들이 바닥을 드러내면 우리는 악동(惡童)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지나가는 여자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기시작합니다…저기가는 저 여자 엉덩이좀 보이소…
이리 실룩 저리 실룩 멋들어진다…..
희롱을 당한 아주머니가 “네놈들은 아빠, 엄마도 없냐?” 고 소리치며 달려들면 우리들은 사자에 놀란 하이에나의 무리처럼 흩어짐으로서 그 즐거운 하루를 끝내곤 했습니다.
<꽃재 예배당>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우리 집은 꽃재 예배당이 있는 언덕위로 이사를 감으로서 아랫동네의 친구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고 나는 모범생이 되어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6학년이 되던해 겨울, 교회의 별관에서 성탄절 노래연습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처음 듣는 찬송가 합창이 들려왔습니다.
” 예수께서 오실 때에 리어카 타고 오시네“….로 시작된 성가는 “며루치, 며루치…된장국 속에서 만나리….” 하는슬픈 장송곡으로 끝났는데….나는 이 미래의 파리 나무 십자가 성가단의 모습을 바라보기 위하여 창문밖으로 고개를 내어밀었습니다.
오! 맙소사! ….그 성가대원들은 바로 아랫동네의 내 악동친구들….진갑이와 은식이와 토란부랄들 패거리 었던 것이지요.
녀석들은 바로 나를 알아보았습니다….야! 김바사! 너도 이 교회다니니? ………………아…쪽팔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자리에 내가 은근히 좋아하던 예쁜 “정숙이” 이가 서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을 쪽팔리게 바라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에는 내가 여러해를 잊고 있었던 기억…그 추운 겨울에 못난 얼굴들을 비비대며 나누었던 추억의 원형질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착한 사람이 되고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기 위하여” 애를 쓰던 나는 창밖에 찾아온 소박하고 싱싱한 원형질의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 무언가…마음 찡한 거시기를 느꼈던 것입니다.
<은식이>
며칠 후에 다가온 그 해 성탄절 이브에는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그 날 저녁의 연극에서 나는 동방박사의 길을 방해하는 “악마” 로 출현하여 명연기를 펼쳤고…성탄절이면 교회에서 당연히(!) 나누어 주는 커다란 빵봉지를 들고 교회를 나섰는데…거기에 “은식이” 가 서 있었던 것입니다….”바사야, 헤헤”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빵을 나누어 준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차마 교회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나는 서슴없이 일년을 기다려 얻은 내 빵을 녀석에게 건네주었는데, 나는 지금도 나의 그 행위가 자랑스럽습니다.
……….가난한 엿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나의 순수한 친구 은식이는 몇 해 후에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는데 지금도 크리스마스 즈음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 교회앞에서 나를 맞아하던 녀석의 모습이 생각나곤 합니다………..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나는 나의 이러한 추억으로 인하여 그 베들레헴의 춥고 어두운 벌판에 있던 목동들을 악동(惡童)들이었다고 간주하는 바 입니다.
천사들은 가장 먼저 이들에게 아기의 탄생을 알려주었는데…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가난하여 장차 예수님이 말씀을 뿌릴 텃밭이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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