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여섯 시에 집을 나섰다. 여름치고는 그리 이른 시각은 아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즉시 냉수 한 컵 들이키고 토마토 한 개를 먹었다. 매일 아침 자고 나면 물 한 잔 마시고 토마토 먹는 일이 나의 항다반사가 된 지는 이미 꽤 오래 됐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하기 시작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 이십 년은 족히 됐을 것이다. 특별히 어디가 어떻게 좋다고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하여튼 몸에 좋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오래된 나의 생활습관이다.
토마토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토마토가 몸에 좋은 채소라는 사실은 다 잘 아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걸 계속해서 꾸준히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첫째는 맛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맛이 괜찮은 것도 간혹 있기는 하나 대체로는 맛이 없고 어떤 것은 지독히도 맛이 없다. 내가 가까이 아는 사람 중에도 토마토가 몸에 좋은 식품인 줄은 알면서도 맛이 없어 못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良藥은 몸에 쓰다'(Good medicine tastes bitter.)는 말의 교훈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처음 토마토를 먹기 시작했을 때는 한동안 설탕을 쳐서 먹기도 했다. 그러나 건강식품 토마토에 건강에 해롭다는 설탕을 발라 먹는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될 일인가. 마음 한구석이 께름칙해서 이내 설탕은 그만 두고 그 뒤로는 맛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그냥 먹기 시작했다. 모든 일에는 연단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주객(酒客)에게는 청탁불문이라더니 내게는 토마토 먹는 데 있어 맛이 있고 없고는 이제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까지 되었다.
토마토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으나 굳이 어떤 것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붉은 색깔을 많이 띠면서 싱싱하게 잘 익은 것이면 된다. 익혀서 먹으면 영양가가 높아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말이 그렇지 먹을 적마다 그렇게 요리(?)를 해서까지 먹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여기서 잠깐 토마토 먹는 법을 인용해서 소개할까 한다.
토마토에는 강력한 항산화제(antioxidant) 기능을 가지고 있는 라이코펜(lycopene)이 들어 있다. 이 물질은 DNA를 파괴하고 사람을 늙게 만드는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혈관을 젊게 유지시켜주는 효능이 있다. 라이코펜은 토마토의 붉은 빛을 돌게 하는 역할을 하므로 덜 익은 토마토보다 붉게 익은 것을 먹는 게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또 토마토는 익혀 먹는 게 좋기로 알려져 있다. 생으로 먹는 것보다 조리해서 섭취하면 라이코펜 함량이 최고 7 배까지 높아지는데, 라이코펜은 열에 강하고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기름으로 조리한 토마토를 먹으면 곧바로 혈중 라이코펜 농도가 2∼3 배로 뛰어오르는 효과도 있다.
그밖에도 토마토는 비타민 C, 비타민 A, 비타민 E, 포타시움 그리고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어 다섯 가지 최고 식품 중 하나라는 건강식품이다.
필자도 한때는 조리를 해서 먹은 적도 있으나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문제는 우선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워서이다. 운동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은 매우 바쁜 시간이다. 그래서 자연 아침 시간에는 서두르기 마련이다.
아침 운동은 일찍 나갈수록 좋다. 산책을 하든 산길을 걷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이른 시간대이면 한결 기분이 좋고 더 상쾌하다. 산책의 멋 중에 첫째는 어쩌면 호젓하게 혼자 걷는 재미가 아닐까. 혼자 다니면 늘 개선장군이다. 길을 가다보면 오가는 사람들을 만나게도 된다. 그야 만나면 만나는대로 좋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적을수록 산책은 산책다운 상큼한 맛이 나는 것이다.
밖에 나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이 알맞게 끼어 있다. 운동 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아침 시간이라 해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여름 날은 따가운 햇살 때문에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다. 됐다. 오늘은 좀 멀리까지 가야겠다. 아파트 바로 앞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쪽 오르막길로 방향을 잡았다.
비봉산(飛鳳山) 정상에 위치한 항공무선표지소까지 나 있는 이 길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이 잘 되어 있어 훌륭한 산책로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가다보면 안양제일경이라는 망해암(望海岩)이 나온다. 일몰 시각 망해암 바위 위에 서서 멀리 서해 바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굽어보는 경치는 가히 일품이다.
일몰, 일출의 장관으로 이름 난 곳이 어디 한두 군데랴. 미국만 하더라도 내가 대여섯 번 가 본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의 일몰 광경이 인상적이었고, 5년 전 New York에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 메인(Maine)주 최고봉 캐터딘 산(Mount Katahdin : 5268ft) 캠핑 여행 도중 가 본 동북부의 맨 끝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의 일출 광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조금 가다 포장길을 벗어나 안양예술공원 쪽으로 넘어가는 등산로로 들어섰다.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고작 한 사람을 만났을 뿐이다. 임곡에 사는 주민들은 아침운동으로는 대개 예술원 계곡까지는 잘 내려가지 않는다. 그 길은 계곡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약간 부담스런 코스다.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은 괜찮은가 본데, 반대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은 잘 택하지를 않는 경향이 있어서 일 게다.
그래서 그 길은 항상 호젓하다. 계곡에는 아직 그래도 물이 다 마르지는 않았다. 유원지 명물 투명원통형 고가(高架) 지붕길과 주차장을 지나 서쪽으로 몇십 걸음 을 걸어갔다. 그다음 곧 우측 삼성산 쪽으로 염불사 안내표지판이 보이는 포장길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처음 가보는 생소한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늘 긴장이 된다. 좋게 말하면 약간의 스릴이 있다할까.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나는 특히 호기심이 많은 탓인지 안 가본 길을 가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의외로 큰 즐거움을 얻곤한다. 새로운 길 택하기를 잘 했다는 결론에 이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이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질까. 목표 지점과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주차 할만한 공간은 있는가 등 긴장을 유발시키는 요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Be alert!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적당한 긴장은 정신위생에도 좋다했다.
목표는 삼막사(三幕寺)라는 사찰까지다. 삼막사가 삼성산(三聖山)에 있는 큰 절이라는 말은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삼막사는 안 보이고 염불사(念佛寺) 안내판만 보인다. 어떻게 된 건가. 한참을 더 올라가다 보니 염불사, 그 다음 삼막사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제 안심이다.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지만 넓고 깨끗하다. 길 옆 계곡에는 맑은 물이 실개천을 이루어 졸졸 흐른다. 깊은 골짜기는 아니지만 비 온 지가 오래 되지 않아 아직 흐를 물이 남아 있다. 물 없는 여름 계곡은 참으로 삭막하다. 계곡이란 말 자체가 물이 흐르는 시내라는 의미의 계'(溪)’자이다.
세상 만물은 저마다 다 하나님의 소명(召命)을 받고 존재한다. 그냥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재하는 사물(事物) 모두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에 걸맞는 사명을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부여해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란 이름을 가진 인간은 사람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고, 시내는 시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존재 이유가 성립하는 것이다.
염불사 가는 숲속 아침 길이 너무 좋다. 둘이 가야만 좋을 이 길을 혼자 걸어가는 내마음… 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기분이다. 다리에는 약간 힘이 들기 시작하고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배가 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몸 관리를 잘못한 탓에 요즘은 배가 많이 나온 터라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먹고 나면 늘 불쾌하다. 특히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는 배가 부르면 죽을 맛이다. 약간 시장할 때가 신체 컨디션으로서는 아마 최상의 상태일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도 배가 부르면 안 된다. 도무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를 않는다. 식후 바로 산을 올라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실감을 했을 터이다.
요즘 나는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뱃살을 빼야 하는 일이다. 복부비만은 보기에도 흉하거니와 만병의 근원이다. 사람은 막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내 배가 나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요즘의 내 팔자는 늘어졌다. 요즘처럼 이렇게 자유를 만끽해 본 적이 일찍이 없었고 이런 행복 또한 느껴 본 일도 없었다. 아무 근심 걱정 염려가 없는 사람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근해야 할 일이 있나. 머리 싸매고 써내야 할 연구논문이 있나. 상사나 동료들 눈치 보고 기분 맞출 일이 있나. 학자금 때문에 걱정할 일이 있나, 자녀 혼사문제로 고심해야 할 일이 있나. 오라는 데가 있나, 가야 할 데가 있나. 입을 옷에 신경 쓸 일이 있나. 어디 낯 낼 일이 있나, 쪽팔릴 일이 있나.
아서라! 요로쿰 방정떨다 경칠라. 내 어머님이나 할머니 같은 어르신이 이말을 만약 들으시면 난 당장 홀쭐이 날 판이다. 옛 어른들은 신체나 신상에 관한 이런 말은 함부로 입밖에 내뱉지 않는 것을 군자의 미덕으로 삼았다. 군자로 말하자면 나 같은 사람이야 군자 근처에도 어림없다만 그래도 남자로서 최소한 입조심은 늘 명심하려고 노력한다. 남자는 세 가지 끝을 조심해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혀끝이다.
무념무상의 발걸음이 어느덧 염불암에 닿았다. 이 절도 역시나 좋은 곳, 명당에 자리를 잡았다. 수령이 600 년이라는 귀공자 보리수가 말없이 초행길 나그네를 반긴다. 싱그러운 7 월의 녹음 속에 새날을 맞는 아침 산사가 참으로 고즈넉하다. 경내가 정돈이 잘 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어디를 둘러 봐도 빈틈이 없다. 가난한 절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절이 부티가 난다. 잘 사는 서울 사람들이 드나드는 절이라 그런가. 믿음을 좆는 성소인 사찰이나 교회 등이 이렇게 부티가 나도 괜찮은 건가. 이른 아침시간이라 그런지 경내에는 청소하는 인부 한 사람만 눈에 띈다.
그런데 올라오다 보니 ‘절대주차금지’라는 표지판이 빨간 색깔의 큰 글씨로 써져 있다. 그것이 눈에 거슬린다. 주차금지면 됐지 절대주차금지는 또 뭐란 말인가! 이건 수도를 하는 승려가 쓸 용어는 못된다. 세속적이요 세상적인 말이다. 동대문시장이나 바닥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절을 관리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의 머리 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보시,보시, 헌금, 헌금뿐인가. 종교가 타락하고 세파에 물들어 있으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다.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한다. 어둠을 밝히고 썩음을 방지해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마당 저쪽 끝에 삼막사 가는 길 안내판이 조그맣게 보인다. 목을 축일 겨를도 없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이제부터는 험한 오르막길이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능선에 다다랐다. 거기서도 삼막사는 보이지 않는다. 안내판으로 보아 삼막사는 거기서 또 골짜기를 하나 더 내려 가서 산 중턱 어디에 있는 모양이다. 안 되겠다. 오늘 아침은 삼막사까지 가는 것은 포기다. 이제는 여기서 멀지 않은 삼성산 정상 국기봉에 갔다가 하산 해야 겠다. 참으로 좋은 곳은 두고두고 마음에 간직했다가 맨 나중에 가보라하지 않던가. 너무 아전인수격인 발상의 전환인가.
능선에서 처음으로 등산객 한 사람을 만났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도 정상까지 가는 가보다.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을 만큼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무작정 뒤를 밟았다. 정상길은 역시 다르다. 어떤 산이라도 호락호락한 정상길은 거의 없다.
드디어 국기봉이 보인다. 왜 이름이 국기봉인가 했더니 국기가 게양 돼 있어 국기봉인이다, 여기 국기는 일 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게양된 상태로 있다. 깃발이 비바람에 많이 훼손이 되어 있다. 펄럭이는 모양이 그래도 보기가 좋다.
삼성산은 고도가 고작 해발 477m이다. 정상에 올라 서니 사방이 탁 트인다. 안양시가지는 물론이요, 아름다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엷게 드리운 아침 안개가 유감이지만 멀리 인천 송도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아차산, 청계산, 광교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가까운 관악산 정상과 남쪽 맞은편 수리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우리 서울은 참으로 아름답다. 외곽 어느 산에서 내려다 봐도 서울의 경치는 가관이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서울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보지를 못했다. 뉴욕이 그렇고, 런던이 그렇고 파리가 그렇고, 모스크바가 그렇고 도쿄도 그렇다. 우리 서울만은 못하다는 말이다. 이런 아름다운 서울이 우리 수도임에 긍지를 느낀다.
미국에서는 차를 타고 멀리 다니다 보면 맥도널드 가게 같은 데서 커다란 성조기가 게양된 것이 자주 눈에 뜨인다. 개인 가정 집도 그렇다. 우리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에는 태극기를 게양해 두면 어떨까. 훌륭한 이정표 역할도 할 것이고 애국심 고취에도 한 몫을 할 것인즉.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가. 도무지 국기가 게양 된 것을 잘 볼 수가 없다. 국기는 나라의 상징이다. 국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애국심의 발로다. 애국심이 없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그런 국가는 망한다. 요즘 학교 교육에 과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교육내용이 들어있기나 한가?
금년이 6. 25 사변 60 주년이다. 6. 25가 북침이라 가르치고,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을 끌어내려야 한다는 망나니들의 아우성도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변고인가. 아직도 그들은 천안함 사건을 폭침으로 인정할 수 없단 말인가. 그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그들의 국적은 남인가 북인가. 그네들의 소란이 너무 한심하다.
사실 왜곡도 유만부동이고 배은망덕도 정도가 있지, 어찌 우리 국민이 이럴 수가 있는가. 눈만 뜨면 정부 욕만 해대고 이적행위만 밤낮으로 일삼는 자들이 우리 하늘 아래 부지기수로 깔려 있다니. 그런 사람들과 어떻게 같은 하늘을 이고 함께 살 수가 있는가.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지금이다.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말인가. 나라를 통째로 적에게 갖다 바치겠다는 건가. 서울 광장에서의 심야 촛불 시위가 애국하는 길인가 이적행위인가.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 이성 잃은 사이비 애국자들이여! 맹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조국 대한민국에 충성은 못할지언정 제발 이적 행위만은 말아다오. 어떻게 지켜온 이 나라요 자유민주주의인데.
내 앞서 올라가 정상에서 쉬고 있던 아까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인사를 하고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은 첫 버스를 한번 타고 나보다 더 먼데서 왔단다. 나는 집에서부터 곧장 걸어온 사람인데. 운동으로 말하면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 하겠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바로 산이니까.
비봉산은 나이든 사람에게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산이다. 특히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한낮에도 산길은 늘 터널 속 그늘이다.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기본 운동기구는 물론이요 안락한 벤치며 정자, 베드민턴장도 여러 군데다. 약수터도 몇 군데나 된다. 산행과 운동에 필요한 조건과 시설을 이 산은 다 구비하고 있다할만 하다. 시간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천국이다. 하기야 어디 노인에게만 천국이겠는가. 젋은 이들에게는 더 좋은 그들의 낙원일 테지.
내려 갈 길이 아득하다. 배가 고픈 게 문제다. 나이 들면서 달라지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배고픈 것을 못 참는 것이다. 못 참는다기보다 일단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사람이 맥을 출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노인은 적게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고 하는가. 그래도 내려가는 일은 아주 쉽다.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하산할 때는 조심만 하면 된다. Watch your step! 산행에서의 사고는 주로 하산시에 생긴다. 단숨에 기분 좋게 힘 안 들이고 유원지 서울대학교 수목원 다리 밑 냇가까지 내려왔다. 가는 길은 멀고 오는 길은 가깝다는 말이 틀림이 없다.
시원한 냇물에 잠깐 발을 담궜다. 내친김에 머리까지 헹구고 나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 이제는 집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다. 그런데 지금부터는 한참 동안 오르막길을 도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는 기분으로 느긋하게 천천히 한발짝 한발짝 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걸어도 황소 걸음. 어느새 능선에 이르렀다. 이제 살았다. 아무리 시장해도 참을 수 있다.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난 젊은 색시들의 아침운동 행렬이 이어진다. 건강한 사람이 미인이다. 보기가 좋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9시 40분이다. 6시에 집을 나섰으니 세 시간 반이 더 걸렸다. 얼른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아내는 가까운 데를 먼저 갔다 왔단다. 나와 보조를 맞추기는 어렵다. 그래서 각각 운동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밥맛이 꿀맛이다. 밥맛이 없으면 사람은 못산다. 그런 사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7 년 전 항암 치료 받던 해의 쓰라린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한다. 그 때는 이 세상에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왔다. 그러니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내가 이 말을 해도 사람들이 곧이 듣지를 않는다. 참 딱하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고 영원토록 간직해야 할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야 하다니….
이렇게 맛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아내가 고맙다.
오늘 하루 시작은 쾌조의 스타트다.
2010. 7. 14.
林谷齋 / 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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