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溪 보시게
그 사이 격조했네.
그 때 설 연휴 경주에서 헤어지고 지금껏 안부 전하지 못했으니.
게으름의 소치이겠건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리라 믿고는 있었네.
바람이 그다지 어긋나지 않아 그 사이 가내제절이 무고하다니 반갑네.
무엇보다도 부인 건강이 좋아지셨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일세.
건강한 얼굴에라야 아름다운 미소가 깃들 여지가 있겠거늘.
우리 나이든 남성들의 명줄은 전적으로 부인의 건강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일세.
늘그막에 마음 편히 해주는 밥 얻어 먹는 일도 보통 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나도 이젠 늙기는 늙었나보세.
근자 대학, 고등학교,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연속으로 한 차례씩 있어 대구를 일차 다녀 왔었네.
그러나 빠듯한 일정 관계상 무계 자네 한테는 연락을 취하지 못한 채 곧장 상경을 해야만 했었네.
새벽 같이 수원역까지 가서 열차로 내려갔다 볼일 마치고 당일 올라와야 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네.
설상가상 해는 짧고 날씨도 험상궂고.
아시다시피 그 동안 이런 모임들에도 수 년을 불참하는 바람에 얼굴이라도 한번쯤 내밀어야 겠기에
不遠千里(?)하고 자의반타의반으로 다녀온 것일세.
이런 일들이 다 인연의 소중함 때문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이라 했네.
이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멸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네.
이 신의 섭리를 우리는 ‘인연’이라 부르며, 이 인연이 소중한 것은 이들이 모두 반짝이기 때문이라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이 반짝이는 존재가 되듯이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들도 저마다 반짝이는 별이 되어 빛을 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거늘.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언젠가는 정해진 운명의 순서에 따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지 않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만남이 많은 플러스 인생이었네만 이제부터는
헤어짐이 많아지는 마이너스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일세.
갑자기 허무주의자나 염세주의자가 되었느냐고? 아닐세, 그런 건 결코 아닐세.
엄연한 하나님의 섭리를 냉철하게 때로는 상기하자는 의도에서 해 본 이야기일뿐일세.
천년만년 살 것 처럼은 처신을 말아야 한다는 생각일세. 피하고 싶고 남의 일로만
치부해버리고 싶은 게 바로 이 이야기이지만.
참고 메일에서 간접으로 소식을 전하는 셈이 되긴 했네만, 친구 김대명 교수는
당분간 바쁜 귀한 신분이 되신 것 같네. 주변에 이런 훌륭한 친구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내가 들어갈 방공호도 이만하면 난공불낙의 요새가 된 기분일세.
노년을 건강하게, 노년을 아름답게, 노년을 보람있게, 노년을 슬기롭게
노익장을 과시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어 이들을 대하는 즐거움,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에 있으랴.
춘설이 난분분한 가운데서도 어김없이 봄은 어느새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네.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 는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었는데……
설레는 가슴으로 맞을 채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가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통상 맞이하고 보내는 아쉬운 봄, 기다리던 그 봄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
소리꾼 장사익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를 그토록 피가 맺히도록 목청껏 애틋하게
읊조리던가.
백설은 녹고 냇가의 버들가지에는 새싹이 움트는 대자연의 삼라만상이 또 다시
잠을 깨어 소생하는 봄이 돌아왔네.
시내쪽 신천변 그 개나리의 황홀함을 보고 싶네. 신천의 개나리는 언제 만개하는고. 섬진강변
매화축제며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 꽃 소식은 듣기만 하고 있네.
영란에 봄이 왔으니, 아! 가고 싶어라 영란으로…………….
2010. 03. 25.
水枝 豊德齋 / 草雲
442 total views, 1 views today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