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희님
아까 메일 보내놓고 나니 아차! 빠진 게 있구나 생각이 들어 다시 몇 자 적습니다……….
그리고 ‘오렌지 나무 곁에서 (9)’를 읽던 도중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어 조심스럽게 말씀드립니다. ….. <여간 조심스럽습니다>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로 됐으면 해서요.

아시다시피 ‘여간(如干)’이란 부사는 ‘주로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보통으로, 조금, 어지간하게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여간 힘들지 않다> 나 <꽃이 여간 탐스럽지 않다>와 같은 예에서처럼 말입니다.

이러고 나니 지난번에 한번 인용한 바 있는 마태복음 7장 4절의 말씀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How can you say to your brother, ‘Let metake the speck out of your eye’ when all the time there is a plank in your own eye?)”라는 말씀이 또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란 항상 그런 거 겠지요.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실수를 되풀이 하는 존재가 우리들 사람인가 봅니다. 그러니 의지할 곳은 오직 한 곳 하나님밖에 없지요. 제가 꼭 ‘똥 뭍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격입니다.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을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성큼성큼요.  고국엔 봄을 재촉하는 비가 엊그제도 밤새도록 꽤 많이 내렸습니다. 해갈을 너머 대지가 충분히 물기를 머금을 정도가 됐습니다. 서울의 기온도 며칠을 계속 10 도 안팎까지 오르고 있습니다. 삼천포 앞 남쪽바다 사량도에로 봄맞이 산꾼들이 떠나는 철이 돌아왔습니다.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는 어릴 적 불렀던 노래가 기억납니다.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이 구성진 목소리로 토해내듯 절규하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도 그렇구요. 그리고 ‘봄 봄 봄, 봄은 다리가 아픈가 봐 나비 등을 타고 오는 걸 보면….’ 도요. 가을이 사색의 계절이라면 봄은 설렘과 충동의 계절이 될까요.

지난 설에는 경주 보문동 사돈 댁에 들렸다가 분재로 정성스레 키워 활짝 피워 놓은 매화를 보는 행운도 가졌지요. 동양화에서 고결함이 군자와 같다 하여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사군자(四君子)라 일컬었으며 그 중에서 매화를 으뜸으로 꼽는 소이를 알듯말듯도 했습니다.

봄의 전령이 어디 매화뿐이겠습니까. 개나리, 진달래, 벚꽂도 조금도 뒤지지 않지요. 젊은 시절은 덤벙대느라 아무것도 몰랐는데 나이가 좀 들면서부터는 해마다 적어도 이들 네 가지 꽃을 보는 것을 저 개인의 연례행사(?)로 지켜오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어느 곳 한두 군데 가서 대충 보고 오는 것으로는 안 되고 이왕이면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로 실컷 보아야 직성이 풀리곤 합니다.

지난해 놓친 Washington D. C.의 벚꽃구경은 올해도 또 놓치게 됐습니다.  미국 벚꽃구경은 저의 팔자소관이 아닌가 봅니다. Central Park의 몇 그루 안 되는 벚꽃은 구경했습니다만. 하기야 뉴욕의 봄도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Flushing도 그렇고 Forest Hills 일대의 주택가들도 봄이면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이더라니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언제부턴가는 몰라도 저는 유별난 꽃광(flower mania)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꽃을 실컷 보지 못한 채 봄이 어영부영 지나가게 되는 해가 있게 되면 그 땐 왠지 가슴속 한 구석이 텅빈 것 같이 느껴지고 그 허전함과 아쉬움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도 하더라니요.

그런 찬란한 슬픔의 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디 오는 봄 놓치지 말고 맘껏 즐길 수 있을 마음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영란에 봄이 왔으니 아! 가고 싶어라 영란으로……..

餘不備禮

고국 서울에서 /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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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아는 것 만큼 보는 것이 확실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한글을 많이 공부해야합니다.
어떤 때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얼마나 힘든지요.

예를 들면 ‘오렌지나무 곁에서’를 쓰다가 화원이 생각나지 않아
널서리라고 썼던 적이 있잖아요.  화원이면 꽃만 파는 곳이 아닌가 싶어
나무도 파는 곳을 뭐라고 하지? 하며 얼마나 고민했는지요.
그래서 화수원이라고 하면 될까?라며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선생님의 지적으로 나중에야 고치게 된 일도 있잖아요.

앞으로도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니 저도 많은 실수를 통해
더 나은 글을 쓰게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윤명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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