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은 유난히 무서운 소리로 윙윙거리며 사납게 바람이 불어댔다. 수 주 동안 감기몸살로 심하게 아파 엄마를 찾아뵙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중압감에 시달렸다. 밖에는 초봄의 변덕스런 날씨 탓에 유난히도 바람 찬 밤이어서 거의 뜬 눈으로 지새다시피 했다. 마치 뒤뜰의 거대한 고목나무도 쉽게 부러뜨릴 것만 같은 기세여서 가끔 귀를 기울이다가 불안한 감정이 일면 옆으로 누운채 몸을 둥글게 웅크리기도 했다.
심한 독감을 두 주 앓다가 엄마를 방문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얼굴을 마스크로 감싼 채 슬며시 방문했던 게 화근이 되어 엄마 병실을 함께 사용하셨던 룸메이트와 함께 마침 기도를 해주려고 방문했던 여자 목사님이 나와 똑같은 증세로 두 주 간 꼼짝없이 드러눕게 되었다며 다 낫기 전에는 절대로 방문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 분들도 심하게 앓아 주일날 교회도 갈 수 없었고 그렇게 심하게 앓아보긴 처음이라며 내가 얼마나 아팠을까 짐작할 수 있었다며 혀를 내두르셨다. 그리하여 그 후 삼 주나 넘게 엄마 얼굴을 뵐 수 없게 되어 얼마나 나를 보고 싶어하실까 생각하면서 몸과 마음이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졌었다.
그날 밤 모든 만물을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사납게 바람 불어 잠을 설치다가 새벽 3시가 넘어 잠깐 눈을 부치게 되었는데 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옆에 놓아둔 핸드폰이 울렸다. 이 깊은 야밤에 갑자기 울리는 전화소리는 나를 몹시 불안하게 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집어들고 “Hello~”했더니 요양원간호사의 조심스런 저음의 음성이 들려왔다. “Your mother just passed away.” 불안했던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지난 밤 호흡곤란이 생겨 산소호흡기로 겨우 숨을 연명하다 아주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이었다.
1923년 3월에 태어나서 2016년 3월에 돌아가신 나의 엄마는 이렇게 한 생애를 마감하셨다. 3월 29일 새벽에 돌아가시고 이틀 후 울고불고 하는 일 없이 엄마가 원하셨던대로 좋아하시던 찬송가 ‘나의 갈 길 다가도록’과 ‘후일에 생명 끝날 때’를 부르며 조용히 천국이송식을 마쳤다. 밖은 유난히 따사로와 활짝 핀 분홍색 목련과 벗꽃이 노란 수선화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던 봄꽃들이 기쁨으로 환송해주는 듯했다.
그날 천국환송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엄마가 사용하시던 화장실에서 엄마 생각에 목놓아 우는데 분명 평소 엄마의 억양인데 중성인 듯한 소리로 “울지마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엄마~”하며 더욱 소리 높여 서럽게 울었다.
내가 살아왔던 일생동안 나를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위로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한없이 퍼부어주신 분. 엄마… 당신이 없는 세상은 더 이상 예전의 세상이 아닙니다. 엄마,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시간은 정지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순간부터 내 삶은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페이스북도 끊었고 인터넷도 많이 끊었다. 몰래 눈물을 훔치다가
오늘 처음 이 글을 쓴다.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솟구치는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윤명희
2016.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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