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 없을 때 욕실에서 목욕하신 후 일어나질 못해 어두워지도록 홀로 앉아 계시다가 몇 시간 후 겨우 일어설 수 있으셨던 일과 집 뒤뜰을 거닐다 넘어진 후 꼼짝하실 수도 없었고 무언가 집고 일어설 수도 없어 한두 시간 추위에 누운 채 떠시다 조금씩 굴러 겨우 일어나신 후 엄마는 점점 더 약해지셨다. 엄마가 자신의 방에 가시려면 몇 개의 계단을 오르셔야 하는데 그마저도 힘들어 네 발로 힘겹게 올라가셨고 자주 빙그르르 돌며 주저앉는 듯 넘어지셨다. 의사인 딸에게 물어보니 더 늦기 전에 마땅한 요양원을 알아봐야 한다고 다그쳤다. 노인들은 넘어져 골상을 입으면 대체로 그대로 돌아가시게 된다며 넘어져 뼈라도 부러지면 큰일이라고 했다. 노인들은 넘어져 사망하게 되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일생 딸을 위해 희생하신 엄마를 어찌 보내야 하는지 죄책감이 몰려왔다. 요양원에 보내드리는 게 효도하는 거라는 의사 딸의 말에 조금 용기를 내서 작년 4월에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텅빈 엄마방을 들여다보며 매일 큰 소리로 울었다. 너무 울어 눈에 진물이 날 지경이었다.
처음엔 환경이 바꿔진 요양원에서 엄마는 아주 힘들어 하셨다. 집으로 가려고 할 때에는 애처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난 너와 같이 있으면 좋은데…”를 되풀이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서 정말 많이 울었다. 엄마 방의 물건들은 만지지도 못했다. 옷만 봐도 엄마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요양원에 들어가실 때까지만 해도 엄마는 그렇지 않으셨다. 엄마가 그렇게 되시리라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라 내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간호사였고 산파였던 엄마는 정말 놀랍도록 건강하셨고 기억력도 탁월하셨는데 요양원에서 세 번 엠블런스로 급히 병원에 입원하신 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요즈음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새벽에 눈만 뜨면 성경을 읽고 외우시던 모습이 사라진 점과 수시로 찬송을 부르시고 잠드시기 전엔 꼭 부르시던 찬송소리도 끊어졌다. 점차 치매현상도 있어 세 번 째 입원하신 후에는 사람도 못 알아보실 때도 많았고 모든 의욕이 완전히 사라지신 듯했다. 전문인들의 간호는 놀랍도록 우수해서 엄마를 극진히 보살펴주었다.
그곳 요양원에는 훌륭한 한인목사님도 상주하셔서 엄마를 위해 기도도 해주셨고 지인들의 많은 기도도 있었다. 나도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소서. 하나님의 때에 불러가소서. 그러나 가능하다면 엄마가 주님나라 갈 때까지 건강을 허락해주시길 원합니다. 엄마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몇 주 전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그동안 말을 잊고 사신 듯하신 엄마가 자꾸 무언가 말하고 싶은 신 듯 뭐라고 하셨다. 너무 기뻐 무얼 이야기하고 싶으시냐고 했더니 “너무 무서웠어. 아주 무서웠어.” 낮은 소리로 느리게 되풀이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꿈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는 이랬다.
“내 90 평생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특히 내가 이북에서 남한으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몰래 내려올 때의 내 모습이 보였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그리고 남한에 내려와서 갖은 고생을 하던 모습이 보이는 데 너무 무서웠어.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싫어. 다시 그렇게 살기 싫어. 얼마나 무서운지…” 나를 쳐다보다 눈을 감고 진저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난 다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계속 무서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또 말을 이으셨다.
“내 90 평생을 보면서 내가 죄를 너무 많이 지은 걸 보았어. 내 죄가 얼마나 많은지 너무 놀라고 무서웠어. 내 일생이 다 보이는 거야. 그런데…” 하시면서 잠시 숨을 고르셨다. 눈을 감았다 떴다 하시더니 계속 말을 이으셨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큰 거야. 내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주 더 컸어.”
우리가 죽어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자신의 일생이 눈 앞에서 순식간에 필름처럼 펼쳐진다는 말은 죽음을 경험한 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을 읽고 들어서 족히 알고 있었던 터라 새로운 건 아니었다. 그러나 걱정스러웠다. 한편 우리 엄마 확실히 낙원에 가시겠구나 생각하며 기뻤지만, 또 한편 혹시나 하나님께서 엄마를 데려가려고 그러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생 자신이 지은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이 훨씬 컸다며 내게 반복해 들려주신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나는 누워계시는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 걱정하지마. 하나님이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몰라.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만 쳐다봐.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두달 전 세번 째 급히 병원에 입원하시게 된 이유는 갑자기 욱하며 입에 피를 물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 후 식도와 다른 한 곳에 혹들이 보이는데 수술로 열어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수술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의사 딸도 적극적으로 수술을 말렸다. 요양원으로 돌아 오신 후 더욱 말이 없으셨고 표정도 더 멍해지신 듯 했다.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의 90 평생을 보신 후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는 징후가 보였다. 지금은 기억력도 돌아오셨고 죽만 주는 요양원 음식은 싫다 하시고 내가 준비해 가는 보통 음식을 드신다. 미국 간호사 셜리가 아침에 자신을 알아보더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의사나 간호사들은 이곳에서 한번 잃어버린 건강을 회복하는 일은 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엄마는 이인실에 계셔서 룸메이트 한 분과 함께 지내시는데 룸메이트 되신 분이 전화로 보통 가까이 귀에다 대고 말해야 알아드셨는데, 오늘은 청력도 좋아지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제 방문했을 때 엄마의 룸메이트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물으셨다. “놀라지 않았어? 이런 걸 믿을 수 있어?” 나는 그 분을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해드렸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인데 그런 일은 많이 들어서 하나도 놀라지 않아요. 대신 하나님께 너무 너무 감사드려요. 우리 권능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오늘도 기도한다. “하나님.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엄마를 데려가셔도 아무 말 할 자격이 없는 제게 하나님의 사랑을 또 경험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다만 제가 원하는 것은 데려가실 때 데려가시더라도 사시는 동안만이라도 건강을 허락해주세요. 아프지만 말게 해주세요. 잠자 듯 편히 주님 품에 안기게 해주세요. 아멘.”
윤명ㅎㅢ
201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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