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반 산업 없어 늘 적자였지만 정치·문화 콘텐츠 다양하고 월세도 싸 예술가들 몰려
페르가몬 박물관 앞엔 예술 목마른 관람객 ‘장사진’
낡은 벽돌 건물의 시멘트 바닥에 노랑과 검정이 섞인 선로(線路)의 흔적이 남아 있다. 총상으로 팔이 떨어져 나간 군인 형태의 조형물이 선로 곁에 설치됐고, 벽에는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담은 그림들이 잔뜩 걸렸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오전 독일 베를린 북쪽 베딩 지역 우퍼할렌,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2006년까지 베를린 시내버스 등을 수리하는 공장으로 사용됐던 이 건물은 이후 한 사업가에게 팔렸고, 리노베이션을 거쳐 창의력 생산지인 ‘예술공장’으로 거듭났다.
독일 북쪽 키엘 출신의 미술가 한스 요르크 슈나이더(54)씨도 5년 전 이곳 작업실에 입주했다. 4m의 높은 천장 덕에 대작(大作)을 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끌었다.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건 임대료였다. 슈나이더씨는 “200㎡(약 60평) 공간을 쓰는 데 한 달에 1000유로(134만원)를 내고 있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이 가격에 쓸 수 있는 대도시는 독일에서 베를린밖에 없다”고 했다. 이 건물엔 슈나이더씨 말고도 예술가 50여 명이 입주해 있다.
동서 냉전의 서글픈 상징이었던 베를린은 이렇다 할 기반 산업이 없어 늘 적자에 시달리는 가난한 도시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유럽을 대표하는 ‘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는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말은 이 도시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다.

지난 10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밀레투스 시장(市場)의 문’을 감상하고 있다. /베를린=곽아람 기자
싼 월세뿐 아니라 풍족한 문화적 토양도 예술가들을 끌어들이는 동인(動因)이 됐다. 2001년에 베를린에 유학 와 작가 및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최찬숙(37)씨는 “베를린은 분단의 상징이라는 역사적 맥락, 정치·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게 공존하는 도시라는 점에서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이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모여들자 자연히 화랑가도 형성됐다. 베를린 중심가 아우구스트 거리 인근은 대표적인 화랑 밀집가. 베를린 대표 화랑 아이겐아트, 노이게림 슈나이더 등 100여 곳이 이 동네에 있다.
기자가 방문한 10일 오후 거리는 한산했다. 화랑들 대부분이 16~21일 열리는 베를린 아트위크 준비로 문을 닫고 설치 준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번화가였던데다가 예술의 향취까지 더해지자 집값은 상승세. 이를 버텨내지 못하고 방을 빼는 화랑들도 있다. 2009년 이곳에 화랑을 연 변원경(42) 안도파인아트 대표는 “우리 옆 화랑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얼마 전 치즈케이크 집으로 바뀌었다. ㎡당 15유로(약 2만원)정도였던 이 동네 월세가 최근 몇 년 새 3배가량 올랐다”고 했다.
예술의 발전이 영세한 예술가들과 화랑을 밀어낸다는 자본주의의 역설 속에서도 어쨌든 베를린은 예술에 목마른 사람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었다. 다섯 개의 박물관이 집결된 베를린 심장부의 ‘박물관 섬’. 이곳의 상징인 페르가몬 박물관 앞엔 종일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페르가몬 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제우스의 대제단’ 등이 전시된 중앙홀이 리노베이션으로 이달 28일부터 2020년까지 문을 닫기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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