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물 밖으로 떠밀려 나와 잔뜩 목이 말라 있는 물고기 신세다. 어느 누가 강제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어쩌다 그런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당연히 밟아야 하는 자연스런 수순에 의한 과정이요 결과이다. 그런 처지로 바뀐 지도 어언 10 년이라는 세월이 다 되어 간다. 10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그런데도 아직 그때의 향수를 완전히는 떨쳐 버리지는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당치도 않은 기회를 혹시나 하고 바라는 공염불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배운 도둑질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운 좋게도 아직은 매년 적어도 두어 차례씩은 신선하고 맑은 물을 공급 받게 되는 행운을 누리고 지내는 처지이니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물고기인가.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나에게는 아이들이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이다. 아직도 아이들 앞에만 서면 왜 그렇게도 신이 나고 행복한지 모르겠다. 그저 싱글벙글이요 세월 가는 줄을 모를 지경이다. 90 분의 수업 시간이 눈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나이는 들어도 사랑과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르는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주로 초등학생이고 어쩌다 중학생도 더러 섞여 있는 때도 있다. 지도하는 과목은 전통예절 및 한자이다. 이번 여름 방학이면 내리 4년 째 이 강의를 계속 맡아 하게 된다. 나의 전공은 영어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한문 선생으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다. 한 때는 농업에다 독일어도 가르쳐 본 적이 있다. 60에 능참봉이라더니 고희를 한참이나 지난 이 나이에 지금의 내가 서당 훈장이 되다니!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영어는 물론이요 우리말에다 한자까지 가르치는 만능교사(?)가 된 판국이니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나 자신도 어리벙벙하다. 그러나 신이 난다.
이 일 모두가 결코 우연만은 아니다. 평소 한문· 한자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살아왔던 내 소망의 결실일 것도 같다. 초급한자 지도사 공인 자격증도 몇 년 전에 이미 취득을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사 년 전의 일이다. 우연히 단지 내 경로당에 몇 차례 들렀다가 회장님으로부터 처음 이 강의 제의를 받았다. 절호의 기회였다. 예절지도 및 한자교육이라! 될 것 같기도 하고 벅찰 것 같기도 했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일단 수락부터 했다. 이밥 조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참으로 막막했다. 가죽은 탐이 나는데 호랑이가 무서웠던 것이다.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수학이라면 가감승제부터 순서 대로 시작하면 될 일이다. 미분· 적분부터 들이밀어서는 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예절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한문 · 한자 지도에 관한 한 나는 그야말로 문외한이었다. 가르치고 싶은 욕심만 앞섰지 당시 내게는 아무런 준비도 노하우도 전무한 상태였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한 가지 무기가 있긴 있었다. 지금도 통할지 모르겠으나 나의 장기 중의 장기인 열정이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때로는 이런 무모한 용기도 필요한 때가 있는 것 같다. 시도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그때 과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지 않았던들 지금의 한문 선생, 아이들이 따르고 알아주는 나는 존재할수 없을 것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할아버지 한문 선생님으로 통한다. 그때부터 지금껏 나는 열심히 한문공부를 하고 교수법을 연구해 오고 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한문 글자 좀 안다고 가르칠 수는 없다. 지도할 과목에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도 물론이다. 학생들은 자신감 없어 보이는 선생님은 따라오지 않는 법이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특한가.
교수법도 계속 진화· 발전시켜야 한다. 지난 해보다 올해는 새로운 방법으로 더 잘 가르치는 훈장이 되어야 한다. 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 써먹는 따분한 접장이 되어서는 인기가 없다. 아이들이 지루해 하지 않게 강의 시간을 이끌어 가야 한다. “쉽고 재미있게” 가 최우선 과제다. 수업이 성공적인지 그렇지 못한 지는 가르치는 본인이 먼저 안다.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반응이 나타난다. 피드백을 정확히 읽어 내야 한다. 장꾼 없는 장의 가게 문은 닫을 수밖에 없다.
원래는 일 개 경로당에서 한 반씩을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인천 연수구 관내에는 경로당이 130 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 이런 한문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불과 10 군데 미만이다. 여기에는 소요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강사 확보 등의 제반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지난 해부터는 유일하게 두 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지원 아동이 쇄도하고 있다. 즐거운 비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나의 지금의 처지가 물 만난 고기와 같다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열치열이다. 여름방학 한참 전부터는 더위 타령을 할 겨를이 내게는 없다. 교재 연구에다 훈장이 먼저 익히고 알고 있어야 할 사항이 태산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나는 한문에 조예가 깊지 못한 사람이다. 아무리 교재 연구를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강의의 성패는 충실한 준비와 교재연구에 달려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고 심취하게 된다. 정승도 자기가 싫으면 못하는 법이다. 이 모두는 내가 좋아 하는 일이다. 논어 옹야편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 생각난다. ‘子曰,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論語, 雍也)’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옛 성현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맹자의 인생삼락 중 ‘천하의 영재를 얻어 이를 훌륭히 길러내는 일이 하나의 낙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가 三樂也니라)’라는 말을 나도 이제사 알 것도 같다.
만시지탄이 없지는 않으나 수 년 째 한자 교실을 맡아 오면서 나는 참으로 새로운 것을 많이 깨닫고 다시 배우고 공부한다. 배우는 쪽은 학생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르치는 나다. 내가 지금껏 우리말에 대해 비교적 무관심했고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지난 40년 세월 동안 교단에 설 수 있었던지 생각하면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능가하지 못한다 했거늘.
말과 글을 바로 알고 쓸 줄 아는 것이 교육의 알파요 오메가다. 강의를 들어도 책을 읽어도 어렵기만 한 것은 말,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식 공부로는 한계가 있다. 반석 위에라야 고층 빌딩을 세울 수 있듯이 교육도 마찬가지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 기초 다지기가 바로 말과 글을 바로 습득하게 하는 과업이다. 내가 지금 지향하고 있는 바가 바로 그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문맹(文盲)’이라는 단어가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면 이 낱말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알아 듣도록 설명할 것인가. 무식하여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상태가 문맹이다. 글 장님이요 글 소경이다. 유식과 무식의 차이는 따지고 보면 글자, 문자를 알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의 차이다. 그러면 유식은 뭐고 무식은 또 뭔가. 한자 없이도 이 말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오늘의 우리는 한글과 한자에다 영어를 위시한 주요 외국어까지도 알아야 행세를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국어 조기 교육에 열을 올리는 것만이 자녀 교육을 성공시키는 능사가 아니다. 매사에는 순서가 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는 없다. 우리말부터 바로 익히게 하는 것이 교육의 정도요 순서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말은 70 이상이 한자어이다.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하랴. 한자를 무시하고는 우리 국어가 성립되지 않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만 떼면 한자어다. 한자는 결코 다른 나라 글자가 아니다. 우리 조상 때부터 수 백 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 우리 전통문자다. 역사와 전통을 소홀히 하는 국민도 일류 문화민족 될 수 있는가. 거기에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우리 고유의 글자인 한글을 가지고 있다. 이 두 문자가 견인차가 되어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만큼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 스펠링은 틀리면 안 되고 자기 이름은 한자로 쓸 줄 몰라도 된다는 말인가. 그러면 아예 한자 이름을 짓지를 말 일이지. 이런 주장을 펴는 필자는 결코 한자 예찬론자가 아니다. 나도 누구 못지 않게 우리 한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문 선생님으로 통할지는 몰라도 사실 나는 우리말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학교에서의 한자 교육은 결코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기초한자, 상용한자는 그 수가 제한 되어 있다. 이를 익히는 것은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은 굳이 익히지 않아도 별 지장은 없다. 이제는 한자교육이 기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자는 글자 한자한자가 다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글자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가 되고 사고를 하게 만든다. 한자의 생성원리(六書)를 이해하면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기까지 하다. 또 그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지도하면 쉽게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한자는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표의문자이다. 거기에다 세계 최고의 표음문자인 한글을 우리가 동시에 무기로 가지고 있으니 어느 누가 감이 우리 적수가 되랴. 이 두 개의 문자가 융합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 우리말이요 우리글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의 원동력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다. 한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뜻을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문자다. 문자는 사고의 수단이요 도구다. 사고는 창조를 낳는다. 맨손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노벨 문학상도 멀지가 않았다. 학문도 연구도 마찬가지다. 물 만난 노장 한문 선생의 신나는 계절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장광설이라 탓해도 괘념치 않겠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가 늘어 놓은 열변의 일단일 뿐이다.
2014-07-20
仁松齋/草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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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 선생님.
그렇지 않아도 어찌 지내시나 궁금했습니다.
멋진 글을 일고 아직도 열정을 잃지 않고 사시는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하고자 하시는 일들이 모두 잘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