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하와이 여행 중 인터넷 신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접한 후 커다란 충격에 빠져 얼마나 울고 가슴 아파했는지 모른다. 그 후 100일쯤 지난 요즈음 갑자기 오리무중이던 세월호 선주 유병언이 전남 순천시 송치재 인근 매실밭에서 부패된시체로 발견됐고 그가 숨었던 인근 별장 ‘숲속의 추억’이 굳게 닫혀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나 어안이 벙벙해졌는지 모른다.

지난 5월 25일까지 살아있었다는 사람이 불과 십 며칠 만에 백골화 상태가 되었다는 점과 항상 몸에 지녔던 안경과 도피자금 20억 원 그리고 휴대전화가 없어진 것과 어설픈 술병들과 죽은 주위 상태도 그렇고, 경찰의 미심쩍은 수사 행태와 급하게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듯한 태도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여러 주장들을 종합해 보건대 유병언은 살해되어 그 장소에 버려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종류의 기사가 나올 때마다 옛날에 읽었던 <노부인의 방문>이 다시금 생각나는 건, 모든 사건들이 일련의 공통점으로 죽음과 타락한 권력 부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학창시절 스위스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의 <노부인의 방문 Der Besuch der alten Dame >을 배웠었고 무대에 올린 것도 보았다. 이 작품은 클레어 차하나시안이라는 노부인이 고향을 방문하면서 일어난다.

젊은 시절 가난했던 클레어는 일이라는 청년과 서로 사랑하였다. 그녀가 임신하게 되자 일에게 배신 당하고, 친부확인 소송을 했지만 일에 의해 매수된 두 증인의 위증으로 패소하게 된다. 귈렌 시를 떠난 후 아이는 죽게 되고 그녀는 창녀가 된다. 클레어는 나중에 갑부와 결혼하게 되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여인이 되었고 일도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지역 유지로 잘 살고 있었다.

파산상태에 이른 귈렌 시에 돌아온 노부인은 그 도시를 도와주는 대신 자신을 배반했던 일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녀는 귈렌 시에 10억 마르크를 기부하고 45년 전 자신을 배반했던 일을 살해하길 원했고 그녀는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귈렌 시장을 비롯한 시민들이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시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고 일의 가게에 진 빚이 늘어나자 일의 죽음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

결국 시 전체가 공모하여 모임에서 함께 일을 살해하게 되고 그 살인 행위가 민주적 절차를 거친 합법적 행위라고 자위한다. 그녀가 준 거액의 돈으로 시는 회생하게 되고 노부인 클레어는 일의 시체를 가지고 고향 귈렌을 떠난다.

뒤렌마트가 쓴 희곡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무대적 효과가 강한 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동네에서 노란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한 두 사람씩 눈에 띄게 되고 차츰 노란 신발의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일은 공포에 빠져가고 그럴수록 노부인 클레어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일을 에워싸고 살해에 동참할 때에도 모두 노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지금도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패거리로 악을 행하는 것이 <노부인의 방문>에서 시를 운영하던 시의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함께 살인에 참여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윤명희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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