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시간은 짧아 허둥대다가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지 내일은 꼭 일기를 써야지 한 지가 여러 주 지났다.
그러면서 엄마와 나의 인생에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건강하기만 하시던 엄마가 걷기 힘들어
하시다가 갑자기 넘어져 일어나질 못하시고, 목욕한 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 혼자 그대로 죽는 건 아닌가 해서 무서웠다는 엄마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나 많은 시간 혼자 소리내어 울었던가.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기도하고 또 하고
가장 현명한 길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얼마나 많은 날들을 지새웠던가.
또한 얼마나 많은 날들을 북바쳐 오르는 눈물로 보내었던가.
고심하고 고심하고 또 고심한 끝에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사실을
설명해 드렸을 때 담담하게 대답하시던 엄마의 모습에 목이 메인다.
오늘도 엄마 옷을 세탁해서 요양원에 가지고 가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의 속팬츠가 아른아른 다 닳아 거미줄 같은 걸 보고
울 엄마 참 아끼고 아끼면서 자신을 위해선 한 푼도 안 쓰시며
살았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한참 울먹였다.
내가 참 무심하게 살아왔구나 생각하며 새 것을 여러 개 사서
갔다 드렸더니 쓸 데 없는 것에 왜 돈을 썼냐며 나무라신다.
이 세상에서 조건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퍼부은 사람은 오직 엄마였지.
항상 내가 잘 되길 바라고 기도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오직 한 사람.
딸들이 둘이나 있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자식은 자식이지…
사랑은 내리 사랑이지 절대 올라가진 않는다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그건 내가 엄마를 생각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자식들은 내가 도움이 되고자 할 때 비로소 나를 인정해주고
존중해준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지.
그래서 나는 절대 내 멋대로 주장하지 않고 언제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사랑은 치사랑이 아니라 내리사랑이라고들 하나보다.
요양원엔 한국 의사와 간호사들이 언제나 대기하고 있고, 한인들도 많아
따뜻한 한식으로 된 식사를 하실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매일 목욕 시켜드리고, 운동도 시켜드리고, 청소도 해주어 너무 감사한 일이다.
더구나 둘이 한 방을 쓰는 엄마의 룸메이트가 참 좋은 분을 만나 더욱 감사하다.
한가지 불편한 건 엄마가 보호자 없이 마음대로 밖에 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엄만 그래서 가끔 우울해지신다.
뜰을 거닐며 채소와 화초를 가꾸길 좋아하셨기 때문에 좀 힘드실 게다.
아직 몇 주 밖에 되지 않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실 것이다.
이럴 때 엄마 곁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더 자주 간다.
돌아가신 후에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지.
엄마 바로 옆 방엔 의사였던 92세 된 백발의 한인 할머니가 초췌한 모습으로
밤낮 없이 끙끙 소리를 내어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 할머니의 룸메이트는
백인 할머니인데 처음 이곳에 입주했을 땐 그 의사였던 할머닌 영어로만
말을 했다고… 그러다 요즘엔 한국말도 한다고 한다.
젊을 때 큰 사업을 했다는 체구가 큰 한인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
중국어와 일어를 유창하게 하고 그 앞엔 백인 할머니가 무슨 소린지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함께 휠체어에 앉아서 고개를 끄떡이며 “흐응, 흐응”
이게 코메디를 보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어느 할머니는 치매증상이 있어 아무 방이나 들어가 남의 옷장 뒤져
아무 옷이나 입고 주인이 내 것이라는데도 “내게 맞으면 내 꺼야…”
정말 가관인 요양원 세상은 코메디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이곳 노인들의 삶을 자주 접하면서 나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나도 얼마 안 있으면 이런 곳에서 나의 생을 마감하게 되겠지.
점점 더 정직하게 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데, 죽음 앞엔
아무 것도 소용없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해왔건, 무엇을 이루었건…
너무너무 모든 일이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이라는 걸…
요즈음 인생이란 무엇인가 더욱 절실하게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뭐 그리 아둥바둥거리며 심각하게 살 필요가 있는가.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해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리라.
그래, 그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는 거야. 숨쉴 때까지…
윤명희
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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