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즈넉한 풍경… 헤세의 슬픔을 다독였네
- 루가노·몬타뇰라=정여울 문학평론가(‘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저자)
입력 : 2014.03.06 04:00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명소’로 소문난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가면 왠지 내 마음을 투명하게 비춰볼 수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기대감으로 찾는 곳이 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런던 블룸스버리의 한적한 골목길,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년을 보냈던 독일의 브레멘 등이 그런 곳이었다. 타인의 떠들썩한 소문보다 내 마음의 본능적인 암시를 따라 정처 없이 거닐고 싶은 곳.
루가노 광장의 풍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의 ‘헤르만 헤세 루트’
스위스 루가노와 몬타뇰라도 그런 장소다. 헤르만 헤세가 루가노 호수를 바라보며 ‘유리알 유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등의 명작을 쏟아내던 곳이 바로 몬타뇰라다. 부친의 죽음, 아내의 정신분열증, 아들의 입원, 자신의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헤세가 나이 마흔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곳, 헤세가 아마추어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곳도 몬타뇰라였다. 독일 군국주의가 발흥하던 무렵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글을 써서 매국노로 비난받았던 헤세는 조국에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금지당하고, 스위스 베른을 거쳐 몬타뇰라에 정착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헤세가 가꾼 영혼의 정원을 찾아가는 내 마음의 여정은 사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8년 전쯤 헤르만 헤세와 카를 구스타프 융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예술과 철학을 고양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본능에 이끌려 융의 자서전과 헤세의 소설들을 겹쳐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마치 영혼의 샴쌍둥이처럼 닮은 아픔을 앓고 있었다.
헤세와 융, 두 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국의 한 독자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주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의 역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융의 자서전은 ‘데미안’의 다음 문장과 똑같은 인류의 화두를 짊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소명은 오직 한 가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일찍이 그 누구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2013년 헤세의 고향인 독일 남부 소도시 칼프(Calw)에서 시작된 나의 여정은 2014년 융 연구소가 있는 취리히, 헤세가 오랫동안 창작의 영감을 받았던 루가노 호수, 헤세가 머물던 집 카사 카무치와 헤세 박물관이 있는 몬타뇰라를 거치며 ‘내 마음의 헤르만 헤세 루트’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취리히 근교의 퀴스나흐트에 있는 융 연구소에서 나는 아직까지도 생생한 탐구열로 융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일요일에도 세미나를 열어 융 심리학의 지적 심화와 대중화를 고민했다. 백발이 성성한 한 심리학자는 “볼링엔에 있는 융의 묘소에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는 내게 “안타깝게도 그곳은 사유지라 여행자가 들어갈 수는 없다”고 친절히 귀띔해주었다.
융은 헤세에게 직접 그림 그리기를 권했다고 한다. ‘레드북(Redbook)’을 통해 내면의 치열한 고뇌를 그림으로 풀어낸 융은 환자들에게도 그림 그리기를 적극적인 자기 치유 과정으로 추천했다. 헤세는 루가노 호수와 몬타뇰라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리며 어떤 글쓰기로도 다독일 수 없었던 내면의 고통을 위무한다
만년설이 뒤덮인 몬타뇰라의 산들과 계절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루가노 호수, 손수 가꾸던 정원의 꽃과 나무들은 작가 스스로 그린 자신의 알터에고(alterego·또 다른 자아, 내면의 분신)로 보인다. 겉으로는 늘 비슷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시시각각 천변만화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몬타뇰라의 이미지는 헤세 자신의 격정적이면서도 고요한 성찰로 가득한 영혼의 풍경화이기도 했다.

몬타뇰라 헤세 산책길 옆 안내 표지판들.
카사 카무치에서 시작되는 헤세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루가노 호수를 넘어 아련하게 내다보이는 이탈리아 접경지대 마을들이 보인다. 매일 이곳을 산책하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을 헤세를 상상하며, 나는 비로소 그가 그리워한 ‘예술의 어머니’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 것만 같았다.
‘이탈리아를 바라보며’라는 시에서 헤세는 노래한다. “호수 저편 장밋빛 산 너머에 이탈리아가 있습니다.” 그에게 루가노호 건너편으로 아련하게 엿보이는 이탈리아는 꿈속의 고향처럼 아득한 노스탤지어의 장소였다.
“이 세상은 그렇게도 늘 나를 속였습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사랑과 고독. 사랑과 이루어지지 않는 동경. 이것이 예술의 어머니입니다.”
헤세가 가꾼 영혼의 정원을 만나다
헤세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성 아본디오 교회(Church of Saint Abbondio) 앞 묘지에 묻혀 있다. 헤세에게 글쓰기가 고도의 지적 모험이자 영적 고행의 길이었다면, 그림 그리기는 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되돌아가 세상을 향한 변치 않는 경이와 열정을 회복하는 놀이이자 치유의 길이었다. 헤세가 손수 씨를 뿌리고, 흙을 파내고, 물을 주며 정성껏 가꾸었을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정원에서 손녀의 재롱을 보며 미소 짓던 헤세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헤세의 집 카사 카무치에서 겨울 속에 숨어 움을 틔울 틈새를 엿보고 있는 봄의 기대에 찬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가지는 헐벗었지만 벌써 바지런히 꽃망울을 터뜨린 꽃들도 있었다.
(왼쪽부터) 헤세 무덤 앞 성 아본디오 교회 / 헤세가 묻혀 있는 성 아본디오 묘지
융은 1919년 헤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당신의 책은 나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보는 등대의 불빛과 같습니다. 당신의 책은 모든 것이 끝나는 곳에서, 그리고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깨어남이 다시금 시작되는 곳에서 가능한 한 최선의 결말을 품고 있습니다.” 수많은 여행책자가 앞다투어 추천하는 명소보다는 ‘내 마음의 무늬를 읽을 수 있는 나만의 장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몬타뇰라는 ‘불현듯 나 자신의 숨은 그림자와 만나는 곳’으로 가장 잘 어울릴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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