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가 전화를 했다. 몇 달 만에 집에 온 남편 때문에 속이 부글거려 두 마음이 싸우느라 무척 힘이 든다는 사연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또 다시 캘리포니아에 벌인 사업을 위해 떠나버려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되었고, 남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야 마는 성격이라 몇 십 년 하나도 변하지 않는 그에게 심한 좌절감이 생겨 마음이 더욱 멀어진다고 했다.
친구는 자신의 나이가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아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그대로 가라앉아 있어 표면적으로는 평온한 듯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굳어질 대로 굳어버린 듯한 오래된 감정 찌꺼기들은 조금만 휘저어도 무섭게 떠올라 온통 악취가 나서 몇 배나 더 힘들다고 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같은 방을 안 쓴지도 오래되어 서로 간섭할 일도 별로 없긴 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속마음을 열어 보인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전화, 이메일, 카톡은 물론 어떤 SNS도 무슨 극비에 속한 것 인양 몰래 속삭이고 감추고 옆에 있으면 슬쩍 어물거리기도 하고 얼른 끊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없는 동안에는 혹시 컴퓨터가 켜졌으면 몰래 들어가서 이메일을 훔쳐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주 기분이 나빴으나 가리운 것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라 누가 언제 들여다보아도 한 점의 의혹도 없는 깨끗한 삶을 살리라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사람이 두려울 게 무엇이겠는가.
오랫동안 남편과의 힘든 관계로 고민하다가 자신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으려고 하니 캘리포니아에 가면 그곳에도 한인모임들이 많을 것이니 꼭 아버지학교에 등록해서 들으라고 부탁하며 만약 이것마저 듣질 않는다면 자신은 이혼까지도 생각한다고 선포했고 남편은 그러마고 했는데 돌아와선 그에 대한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자신의 감정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만 퍼부었다고 했다.
친구는 오래 동안 사용치 않아 바테리가 방전되어버려 큰 차 사용을 포기하고 다행히 시동이 걸리는 작은 차를 몰고 나가는 남편의 등뒤를 바라보며 사람관계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친구는 자신의 속마음을 조금 열고서 자신도 나이가 들은 탓인지 젊을 땐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인데 지금은 해야 될 일들을 생각만 해도 힘이 든다고 했다. 점점 스러져가는 노쇠한 친정 어머니도 돌봐주어야 하고, 바쁜 자식들도 도와주어야 하고 온통 자기가 도와주어야 할 것 뿐이라 가끔 우울해진다고 했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그게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니야?”라며 “기도하고 성경 보면 우울해지지 않아. 당신은 책만 읽지 말고 성경을 읽으라고… 난 성경 읽고 기도하니까 하나도 우울하지 않아.”라는 말에 이런 인간과 무슨 대화가 되나 기가 막혔다고 한다.
친구의 남편은 오히려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강조하기에 바쁜 그의 모습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이가 없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데?”라고 쏘아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 너는 친척들도 많고 갈 곳도 많고 할 일들도 많아 아주 행복하겠다. 너나 잘 먹고 잘 살아라.”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는 친구의 남편은 아이들이 주지 않으면 살기 힘든 친구에게 대뜸 한다는 말이 “난 자식들에게 돈 달라고 손을 벌리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며 이 무슨 기막힌 일이냐며 하소연했다.
이런 삐뚤어진 여러 가지 형태의 비정상적인 행위들은 그들이 자라온 환경에서 나온 산물이다.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하고 공감하는 심층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고 그저 공부나 잘하고 속은 어찌 됐든지 겉치레나 잘하면 된다는 식의 표피적 인간으로 키워진 까닭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연민이나 동정보다 더 깊은 개념으로 남의 딱한 사정이나 불행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남이 처한 환경이나 처지에 자기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그 사람이 느끼고 있는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친구의 남편이 조금이라도 공감력이 있었다면 친구가 어렵게 자신의 우울함을 피력하였을 때, “여보, 미안해. 내가 아직도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해서 미안해. 내가 하던 일이 끝나면 당신이 하고 싶다는 것을 해 줄께. 당신이 무엇을 하기 원하는 지 말해줄래. 응?” 말 한 마디에 천 냥 빛을 갚는다고 외로운 아내를 말로라도 이렇게 공감해주었더라면 친구가 이렇게 서럽진 않았을 것이다.
조비룡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가 연골, 관계, 할 일,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삶의 마지막 10년이 행복하다고 했다. ‘자기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주위 사람들과 정 깊게 교류할 수 있는가’’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보람이 있는가’ 이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우리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행복한 관계에서 건강도, 하고픈 욕망도 생긴다.
윤명희
2015-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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